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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하나님의 비웃음.(시편 2편)

by TwoTalents 2020. 5. 2.

이미지 출처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하나님의 비웃음.

 

본문 : 시편 2편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 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 어다

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말씀 :

시편 2편은 시편 1편과 짝을 이루어 시편 전체의 서론을 구성한다.

 

이 시의 내용은 왕의 대관에 관한 것이다.

다윗 시대 이후 유대의 어떤 한 왕의 대관식에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고 구원을 이루시리라는 선포가 나타난다.

그래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시로 여겨진다.

사도행전 425, 26절은 직접적으로 시편 2편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13:33시편 둘째 편에서라고 밝히면서 그 내용이 바로 예수를 말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다윗 당대의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세상에 임했을 때의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는 원수들의 대적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왕위에 오른 것이 이 시의 주제이다.

이 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실존했던 다윗을 염두에 두고 읽어 보면 그 뜻이 분명해지고, 구약의 역사를 노래한 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다윗이란 실존 인물에 대해서 묘사하면서 그 뒤에 상징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시를 먼저 역사적 인물 다윗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고, 다음에는 영적 다윗, 즉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로 살펴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 시의 참된 진리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은 두 번째 관점으로 시편 2편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시편을 개역 한글이나 개역 개정으로 읽어서는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누구의 말이고 누가 고백하고 있는 부분인지가 불명확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인지, 저자 개인의 고백인지, 저자가 소개하는 기름 부음 자의 고백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을 표준 새 번역으로 읽으면 좀 더 그 내용이 명확해진다.

 

(표준 새 번역)

1. 어찌하여 뭇 나라가 술렁거리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함께 꾸며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3.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버리자하는가?

4.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웃으신다. 내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 마침내 주님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을 세웠다하신다.

7. “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8. 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너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9. 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하셨다.”

10. 그러므로 이제, 왕들아, 지혜롭게 행동하여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경고하는 이 말을 받아들여라.

11.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진노하실 것이니, 너희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망할 것이다. 그의 진노하심이 지체없이 너희에게 이를 것이다.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시편 2편은 다음과 같이 네 장면으로 나누어서 이해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첫 단락은 1~3절까지 분노하는 열방들을 나타내며, 두 번째 단락은 4~6절까지 하늘에 계신 주께서 그들을 향해 비웃으시는 것을 나타낸다.

세 번째 단락은 7~9절까지 아들이 받은 명령을 말하고 있고, 마지막 단락은 10~12절까지 주의 기름 부음을 받으신 자에게 순종하라는 군왕들에 대한 권고로 이루어져 있다.

 

첫 단락인 1~3절에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인간 본연의 증오심이 묘사되어 있다.

1절에서는 저자의 탄식과 질문으로 시작한다.

본문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저자는 열방이, 민족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그들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을 보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열방이 하나님께 분노했으며 민족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마음속에 헛된 것을 꾀한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꾸미는 헛된 일이 무엇인가?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를 대적하려고 한다.

이 일을 위해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서로 동맹하고 계획을 세운다.

본문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악의를 품고서 서로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들의 헛되고 죄악 된 일이 그 지도자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 대적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행동이 아니다.

이들은 계획적으로 동맹을 맺고 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전쟁을 벌이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적자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본문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이제는 스스로 자유롭게 하자.”

하나님께 매인 것을 끊어버리자.”

이제 우리 자신이 우리의 신이 되자.”

우리를 속박하는 하나님의 굴레를 모두 벗어 버리자.”

그들은 배반자의 오만함으로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결박이라고 표현하며 끊어버리기를 원하고 있다.

마치 그들이 정말로 그것을, 하나님의 구속을 끊어 버릴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착각하며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매인 것을 내가 끊을 수 있는가?

 

이런 대적자들의 말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신다.

본문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저 우스운 일이 뿐이다.

가당치도 않고, 되지도 않는 일에 열방과 민족들이 힘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비이성적이며, 헛된 고생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어리석은 민족의 모습을 보시며 그저 웃으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본문 5, 6.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배반자들을 행해, 대적자들을 향해 분을 발하시고 곧바로 강한 손으로 그들을 후려치시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대적자들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세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대적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헛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시듯 이미 세워진 왕,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선포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던 그들에게 정말로 놀랍고 장엄한 선포였다.

대적하는 자들이 막고자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인데, 하나님은 이미 행하신 것이다.

벌써 한 왕을 시온에 세우신 것이다.

그들이 꾀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다.

사람들의 뜻은 헛된 것이 되어버리고,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이 벌써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여 하나님의 굴레를 끊고 그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자행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는 오만한 자들이 오늘도 스스로가 왕이 되려는 헛된 일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들을 보시며, 그들을 비웃으시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미...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노라.”

이미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을 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께서 시온에서 통치하신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앞으로 더 큰 투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승리하셨다.

 

세 번째 단락인 7절에서부터의 고백은 또 다른 화자의 것이다.

1절부터 6절까지가 시편 지은이의 고백이었다면 7절부터는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자신의 통치권을 선포하며, 반역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경고하고 계신다.

본문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세워진 왕의 자격으로 직접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공포하시는 것이다.

자신이 기름 부음 받은 자이며, 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낳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시면서 8절과 9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어떠한 권세를 주셨는지를 하나하나 말씀하신다.

본문 8, 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그의 소유가 땅끝까지 이를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그분께 철장을 주셔서 반역을 꾀하는 열방을 깨뜨릴 힘과 권세를 주셨다.

대적자들이 비록 제국의 힘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여러 민족이 동맹하고 연합한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그 손에 철장을 들고 일어서시는 날에는 토기장이의 그릇이 깨어지듯 열방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은 오로지 부러질 뿐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단락인 10절부터는 다시 시편 저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이제 시편의 장면이 바뀌어 반역을 꾀하는 자들에게 권고하는 말씀이 주어진다.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들이 미워했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입을 맞추고 충성과 애정을 맹세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본문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원수들은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주의 교훈을 받아야 함을 충고하고 있다.

그들은 결단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러니 헛된 꾀를 버리라는 것이다.

정신 차려서 그분께 기꺼이 순종하라는 것이다.

예수께 순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반대로 그분의 원수가 된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음이다.

 

11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할 것을 종용한다.

본문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경외하다라는 단어에는 그 대상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두려움을 간직해야 한다.

그분이 강하신 하나님이시고 죄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고개 숙여 그분께 경배를 드리고, 크신 하늘의 아버지께 두려움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한다.

본문의 떨며라는 것은 경외하다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에는 항상 거룩한 두려움이 함께 있어야 한다.

두려움과 기쁨이 함께하는 제물은 향기로운 제물이다.

기쁨이 없는 두려움은 고통스러운 고문이다.

단지 무서움일 뿐이다.

그리고 거룩한 두려움이 없는 기쁨은 주제넘는 방종일 뿐일 것이다.

교만해지기 쉽다.

두려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12절을 통하여 그의 아들,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입 맞출 것을 권하며 그와 더불어 화해할 것을 권고한다.

본문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기름 부음 받은 자와 화해하지 못할 때, 결국 그의 진노하심으로 인해 망할 수밖에 없음을 선포한다.

하지만 이 시는 이렇게 경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시편 저자의 탄식과 하나님의 분노로 가득한 이 시의 마지막은 축복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여호와의 그늘 아래로 들어온다면.

진노와 멸망 속에서 주께 무릎 꿇고 주의 팔을 찾아 안기게 된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참된 형통함이다.

 

말씀 마무리.

시편 2편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경건한 열방들의 불순종과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대조하여 볼 수 있다.

대적자들은 토기장이의 그릇이 깨어지듯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에게로 피하는 자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2010년에 개봉된 원빈 주연의 아저씨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한 어린 여자애를 구하려는 옆집 아저씨 원빈이 이런 대사를 한다.

 

내일만 보고 사는 놈들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너무 멋있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만 살기 때문에 더 열심을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포기에 가까운 것이다.

어차피 오늘만 살 거, 아까울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듯이 달려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결코 오늘만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영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일 때문에, 내일의 일 때문에, 나를 위한 영원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에게 준비된 영원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그늘 아래서 하나님께 피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오늘만 사는 것도 아니며, 내일만 보고 사는 것도 아닌, 영원을 꿈꾸며 살아가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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