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입다의 실패(사사기 11:12~40)

by TwoTalents 2020. 1. 8.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입다의 실패

 

본문 : 사사기 11:12~40

12.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14.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18.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23.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24.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25.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26.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27.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28.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29.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말씀 :

지난 시간에는 어려움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으로 성공에 이르렀던 입다를 나누었다.

이번 시간에는 그렇게 멋진 성공을 이루었던 입다가 어이없게 실패하는 것을 나누려고 한다.

이것으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대한다.

 

길르앗의 머리와 장군이 된 입다는 본격적으로 길르앗을 괴롭히는 암몬 왕과 협상을 시도한다.

일단은 자신의 장기인 협상력으로 암몬과의 갈등을 평화롭게 해소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본문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여기서 입다는 길르앗을 내 땅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두고, 입다의 교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만큼 길르앗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그가 내 땅이라고 표현할 만큼 확실하게 길르앗의 머리가 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입다가 분쟁지역을 내 땅이라고 표현하자 암몬 왕도 이에 응수한다.

본문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암몬 왕도 이곳이 자기 땅이라는 것.

자기 땅을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점령한 것이니 좋은 말로 할 때, 돌려달라는 것.

 

암몬 왕의 이 말을 들은 입다가 본문 14~27절까지 긴 이야기를 통해 암몬 왕을 다시 한번 설득하려고 한다.

입다는 요단강 동편 땅의 지난 역사를 설명한다.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의 관계,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 등을 말하며 이 땅이 이스라엘의 땅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지역은 단 한 번도 암몬 족속의 땅이었던 적이 없다.

이곳은 원래 모압 족속의 땅이었고, 나중에 아모리 족속이 이곳을 점령하였다.

그러던 것을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자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암몬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입다 당시에 암몬 족속이 모압 족속을 점령했기 때문으로 본다.

지금 모압이 자신들에게 속해 있으니깐 옛날 모압의 것도 지금 암몬의 것이라는 것이다.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애초에 이 지역을 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약속받은 땅은 요단강 동편이 아니라 요단강 서편 가나안 땅이었다.

처음에 이스라엘은 이곳을 평화롭게 지나가려고만 했다.

그런데 아모리 족속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것이다.

본문 19~22.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아모리 족속이 지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오히려, 공격을 해버리니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모리를 치시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던 그 땅까지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것.

이스라엘의 신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입다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본문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무슨 말인가?

나는, 우리 이스라엘은 너와 너희 민족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행하려면 행하라.”

그대로 맞받아쳐 주겠다.”

전쟁도 안 무섭다. 하나님께서 판결해 주실 것이다라고 덤빌 테면 덤비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결국, 암몬 왕은 입다에게 설득되지 않았고, 암몬과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게 된다.

본문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옳고 그름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라는 입다의 고백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신 것이다.

이제 입다는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전쟁을 치르면 된다.

입다 스스로가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억지를 부리는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입다가 이상한 일을 벌인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실패의 나락으로 빠트려 버린다.

본문 30, 31.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느닷없이 전쟁의 결과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해버린 것이다.

이 서원의 제일 큰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심으로 이제는 믿음으로 전쟁을 치르면 된다.

가서 승리하면 된다.

그런데 결과를 의심하면서, 지금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입다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용사이고, 과감하게 전쟁의 불사를 암몬 왕에게 선언했지만.

그렇더라도 막상 전쟁 앞에서는 불안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드온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재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무조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셔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기 뜻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려 한 것이다.

입다는 장로들보다도 먼저 전쟁의 주관자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불신앙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서원의 또 다른 문제점은 지극히 이교도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입다를 변호하기도 한다.

아마도 입다는 자신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동물일 것을 기대하고 이 서원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에 동물을 기르는 것을 마치 오늘날의 애완동물 키우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생각한 것에서 오는 오류일 뿐이다.

입다는 당연히 사람을 염두에 두고 서원을 한 것이다.

누구든지 제일 먼저 보게 될 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고 서원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원하신 적이 없다.

사람을 위해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믿음의 조상이 될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일회적 조치였을 뿐이다.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전통은 지금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는 암몬 족속의 전통이다.

그들이 섬기는 몰록혹은 밀곰이라고 불리는 신에게 사람을 번제로 드렸었다.

지금 이스라엘의 신앙 상태가 온갖 잡신을 섬기는 이방 문화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영적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일회적 영적 감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계속된 하나님과의 교제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암몬과의 전쟁은 당연히 승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입다의 서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승리이다.

입다는 혼자 쓸데없는 일을 벌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승리 후에 입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가장 먼저 맞이한 이가 하필이면 입다의 하나뿐이 딸이었다.

본문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아마 입다는 집안일을 돕는 노예나 시종 중에서 한사람이 가장 먼저 자신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설마 그 많은 사람 중에 자신의 하나뿐인 딸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가 되어버렸다.

입다는 자신의 괴로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본문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입다의 영적 무지, 율법의 무지가 또 드러나게 된다.

율법에는 잘못된 서원에 대해서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무리한 서원에 대해서는 고칠 수 있고, 어떤 때는 무효가 될 수도 있다.

레위기 288.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네가 정한 값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서원자가 감당하지 못할 서원에 대하여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수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민수기 308.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서원자의 경솔한 서원에 대해서는 무효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다의 서원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서원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한 입다의 경솔한 서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무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리면 된다.

그런데 입단은 이런 율법의 내용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입다를 변호하는 분들은 이 부분에서도 입다가 율법에 무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율법을 알고 있었지만, 지도자로서 한번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저는 이런 말은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 긴 평화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렸다가, 블레셋과 암몬에게 18년간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을 볼 때.

이스라엘 전체가 율법에 무지하다고 봐야 한다.

입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입다는 창기의 아들로 태어나 형제들에게 핍박받고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쫓겨난 돕 땅에서 자신을 따르는 잡류들과 율법 공부나 하고 있었겠는가?

그리고 율법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하나뿐인 딸을 죽게 놔두었다?

이거야말로 당시 상황에서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무지일 뿐이다.

무남독녀이다.

딸이 죽으면 입다의 가문은 이제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사사라는 입장 때문에 그것을 감수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입다는 율법에 그리 해박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조금 다른 내용으로 입다를 변호하는 주장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 드려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있다.

본문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우리가 읽는 번역 성경에는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그냥 처녀로 인하여이다.

이 부분 때문에 입다는 딸을 번제로 드려 죽이는 것이 아니라, 평생 처녀로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서원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전체를 무시한 채 이 구절만을 인정한 해석에 불과하다.

입다는 앞에서 분명하게 처음 본 사람을 번제로 드릴 것을 서원했다.

그리고 입다의 딸이 처녀로 있는 것은 이 문장의 구조상 서원의 상태인 것이지 서원의 결과가 아니다.

번역본에서 죽음이 추가된 것은 원래 뜻을 오해 없이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입다를 변호하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사조차도 영적으로, 율법적으로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상태를 생각하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말씀 마무리.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입다의 실패이다.

입다는 모두가 두려워했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것만 봐서는 그가 분명히 성공한 사람, 성공한 지도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수로 하나밖에 없는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것으로 입다 가문은 영원히 이스라엘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명백한 입다의 실패에 의한 결과이다.

지난번 말씀과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딸의 죽음, 가문의 단절 자체가 입다의 실패가 아니다.

이것은 실패의 현상이다.

이렇게 된 이유,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진 것이 입다의 진정한 실패인 것이다.

 

그렇다면 입다는 왜 실패하였는가?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는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입다의 성공은 그가 끝까지 하나님을 기억하였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 살펴본 입다의 실패는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 것이 불씨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자기주장을 내세웠던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영적 무지, 돌이킬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율법의 무지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성공을 이루었던 입다는, 하나님을 모르고 오해한 것으로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입다는 하나님의 영을 받았음에도 정작 하나님을 잘 몰랐다.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승리 앞에 자기 뜻을 내 세웠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사람을 제물로 드리겠다는 어이없는 서원을 한 것이다.

율법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에 자신의 경솔한 서원을 번복하지 못하고 착한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도, 하나님의 일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 사람도.

그가 인간이기에 바로 그 자리에서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믿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적인 영적 감동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셨다는 순간의 증거가 아니다.

하나님의 일에서 드러나는 당장의 결과들이 아니다.

모든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하고,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오늘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서 성령의 감동만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것으로 자기가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방언 한번 터졌다고, 자기 생각, 자기 느낌이 다 하나님의 뜻인 양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면, 이제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기 위해 말씀을 읽어나가야 한다.

방언을 주신 것은 연약한 믿음에 확신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 주님을 믿고 말씀을 읽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말씀을 기본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록 믿음의 행위라 할지라도 그 위험성은 매우 크다.

말씀의 무지가 잘못된 열심의 원인이 된다.

말씀의 무지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말씀의 무지가 나를 구원의 길이 아닌, 사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이 참된 감동이 될 수 있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오직 말씀을 기본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에 우리의 진정한 성공이 있다는 진리를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교회 공동체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사람이교회'는 온라인교회입니다.

'사람이교회'와 함께하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amichurch@naver.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