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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7 사사의 시대-사사기(I)

입다의 성공(사사기 10:17~11:11)

by TwoTalents 2020. 1. 8.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입다의 성공

 

본문 : 사사기 10:17~11:11

10:17.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0:18.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11:1.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11:2.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11:3.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11:4.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11: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11: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11: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11:8.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11:9.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 냐 하니

11:10.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11.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

 

 

말씀 :

사사 입다 시대의 이스라엘은 그 어느 시대보다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였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상숭배가 만연한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의 징계도 이전보다 훨씬 무거웠었다.

블레셋과 암몬 자손들을 인하여 두 배의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 고통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습의 진정성이 의심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습관적으로 죄를 범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찾는 것마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마저 습관적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한다고 하더라도 더이상 그들을 구원하지 않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그들이 우상을 제하여 버리고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행동을 취했음에도 그 모습마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하나님께서 보기 싫어 하셨다.

오늘 본문은 이런 이스라엘, 그러니깐 그들의 회개가 진정성이 없다고 의심되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본문 17, 18.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암몬 자손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한다.

곧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 대해 하나님께 한마디의 상의도 없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누가 가장 먼저 나가서 암몬과 싸울 것인지 걱정하는 것이 다였다.

예전 같았으면,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우림과 둠밈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상을 제하여 버렸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시 섬긴다는 사람들이, 전쟁에 관해서 하나님께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것이다.

거기다가 누구라도 전쟁의 선봉에 서며 그를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게 하겠다고 말한다.

자기들 마음대로 전쟁의 포상까지 정해버리는 것이다.

길르앗의 머리로 세운다는 것은 길르앗의 지도자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지도 않으시는데, 전쟁을 빌미로 자기들 뜻대로 지도자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상황을 설명하고 난 후에 이제 한 인물에 관한 설명이 나타난다.

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사사 입다이다.

본문 111, 2.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길르앗 사람 중에 입다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 이름도 길르앗이다.

그는 큰 용사라고 소개한다.

본문의 용사는 히브리어로 깁보르라는 단어이다.

이는 강력한, 전사, 우두머리, 빼어나다, 힘센 등의 뜻을 가진다.

입다는 힘이 세고, 리더십도 있으며, 여러 가지 빼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진 능력은 많았지만, 출신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다.

기생으로 번역된 이 말은 히브리어로 조나라는 말이다.

기생은 순화된 표현이고, 실제는 창녀 혹은 매춘부에 가까운 단어이다.

입다는 한 남자의 난잡한 성생활로 인해 어쩌다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배다른 형제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고,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형제로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형제들은 입다에게 절대로 아버지의 기업 중에 일부라도 줄 수 없다고 자기들끼리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사사기에는 이런 입다와 비슷한 경우의 인물이 한사람 더 있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300 용사를 이끌었던 기드온의 첩의 아들이었던 아비멜렉이다.

입다처럼 아비멜렉도 어려서부터 차별을 겪으며 자라났을 것이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자신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모욕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세겜 사람들과 작당을 하여 배다른 형제 70명을 일제히 죽여 버린다.

그리고는 스스로 왕이 되어버려다.

가족을 완전히 와해시켰고, 나중에는 민족을 괴롭게 했던 아비멜렉이다.

아비멜렉이 자라난 환경을 생각하면 한 편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용납될 수는 없다.

오늘의 주인공 입다는 아비멜렉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삶을 살았다.

첩도 아니고 입다는 창녀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비멜렉처럼 형제를 향한 피의 복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다는 자신이 형제 곁을 떠나는 것을 선택하였다.

본문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도 마음만 먹었다면 아비멜렉처럼 자신을 업신여긴 형제들을 죽이고 길르앗의 왕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용사였다.

하지만 입다는 형제와의 다툼보다는 그들과의 헤어짐을 선택하였다.

형제들을 피해서 돕 땅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여러 범죄자들이 어릴적 가정 환경이나 자라 나면서의 교육 환경 등이 좋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범죄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받아야 할 벌이 경감되거나 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잘 자라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을 향한 노력은 환경을 탓하면 마음대로 살았던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삶이다.

결코, 어떠한 범죄도 환경 탓, 조건 탓, 주위 사람 탓으로 무마될 수는 없다.

 

어쨌든 돕 땅으로 이동한 입다는 거기서도 리더로서의 기질이 다분히 발휘된다.

본문에서 잡류로 표현되는 사람들, 입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입다에게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들을 통솔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처음에 읽었던 1017, 18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것을 본문 114절에서 다시 한번 기록한다.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본문의 얼마 후에가 정확하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입다가 돕 땅으로 이주한 다음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제 이스라엘은 암몬과의 전쟁이 곧 시작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회개에 응답하시지 않고 있다.

거기다가 누구 하나 전쟁에 선봉장을 서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길르앗 사람들은 형제들에 의해 쫓겨났던, 그 쫓겨남을 자신들이 수수방관했던 창기의 아들, 입다가 떠 올랐던 것이다.

?

그는 자신들과 함께 있을 때부터 용사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돕 땅에서 일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르앗 장로들이 몸소 돕 땅까지 입다를 찾아가게 된다.

본문 5, 6.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입다는 형제들에 의해 쫓겨났었다.

특정한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고, 단지 출신 성분 때문에 고향에서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찾아온 장로라는 인간들은 그것을 묵인하는 것으로 입다를 쫓아내는 것에 동조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찾아와서 부탁한다고 입다가 기분 좋게 그것을 수락할 리가 없다.

이런 사실은 입다를 찾아온 장로들 자신도 잘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입다에게 자신들의 장관이 되어줄 것을 제안한 것이다.

여기서의 장관은 군대를 통솔하는 총 책임자를 말한다.

그런데 이 제안 속에도 은연중에 입다가 탐탁지 않음이 드러난다.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입다를 찾아오긴 했지만, 그들에게 입다는 여전히 출신이 미천한 창기의 아들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암몬과의 전쟁에서 가장 선봉에 서는 자를 자신들의 머리가 되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선봉에 설 사람이 없자 입다를 찾아와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입다에게는 전체의 머리가 아니라, 단지 군대의 통솔자, 군대 장관만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런 속내를 알아서인지, 아니면 실제로 섭섭해서인지 입다는 장로들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본문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아니 지난날 나의 상처가 얼마나 큰데.

그 상처에 한몫을 한 사람들이 당신들인데.

이제 암몬에게 환난을 겪는다고, 나에게 찾아와서 부탁한다는 것이 너무 뻔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가 여전히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 자신들이 작정했던 것으로 다시 입다에게 제안한다.

본문 8.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그래 미안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함께하려고 왔지 않느냐?

당신이 우리와 함께 암몬과 싸워준다면 당신을 우리의 머리, 즉 지도자로 섬기겠다.

 

장로들은 비굴하게라도 입다를 설득시켜야 했고, 입다를 전쟁의 선봉장으로 내세워야만 했다.

그만큼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이 내외적으로 심각했던 것이다.

장로들의 마지막 제안을 들은 입다는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한다.

본문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시점이다.

이스라엘의 전쟁에는 당연히 하나님이 빠질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9절에 와서야 여호와의 함께하심이 고백 되었고, 그 고백은 이스라엘의 장로가 아니라 그들이 쫓아냈던 창녀의 아들 입다에 의한 것이었다.

앞서 비교했던 아멜렉과 입다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비멜렉은 자기 맘대로, 자기 힘으로, 자기가 복수하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그런데 입다는 아비멜렉과는 달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믿고 의지하였다.

전쟁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는 고향에서 쫓겨나 돕 땅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

비록 잡류들과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지만, 그러는 중에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었다.

그리고 언젠가 주어질 기회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기회는 주어졌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이 전쟁은 분명히 승리할 것이다.

입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며 장로들이 자신과의 약속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도록 하였다.

장로들은 입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본문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입다의 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듣게 되는 것에 적잖은 당황을 되었을 수도 있다.

자신들조차 이 전쟁을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로들은 입다에게 하나님을 증인으로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한다.

이 전쟁은 애초에 하나님이 빠진 전쟁이었다.

하지만 입다의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입다는 미스바에 가서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이 상황을 아뢰게 된다.

본문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말씀 마무리.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입다의 성공이다.

우리는 입다가 성공할 수 있게 된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그는 능력이 있었지만, 출신 성분 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했다.

차별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입다는 이런 수모를 자신의 감정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자라난 환경 탓하고, 교육 탓하면서 인생을 허비하며 막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고향을 떠나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출신 성분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는 없었지만.

자신에게 모여드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상처 입은 자들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인도했었다.

그러는 중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어느 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당당하게 장로들과 협상하였다.

그것으로 자신을 쫓아냈던 길르앗의 군대 장관은 물론 그들의 지도자가 되는 놀라운 일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입다의 성공은 그가 군대 장관이 되고 길르앗의 머리가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입다의 성공에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입다의 성공은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한 것이다.

형제에게 차별을 받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나도.

하나님을 놓지 않은 입다의 믿음이 바로 성공이고 승리인 것이다.

 

사랑하는 믿음의 신앙공동체 여러분.

믿는 우리의 성공은 주어진 환경이나 외부 요인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큰 건물이 우리의 예배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재정이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유지들과의 인맥이 한마음교회를 높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성공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의 승리임을 고백한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오늘도 주를 위해, 내일도 주를 위해 사는 믿음의 신앙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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