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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0 친구의 외침

바르게 아는 것이 힘이다.(요한복음 18:1-11)

by TwoTalents 2024. 4. 7.

 

 

제목 : 바르게 아는 것이 힘이다.

 

본문 : 요한복음 18:1-11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말씀 :

어떤 정보나 지식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서 낭패를 보신 적이 있는가?

그 정보나 지식이 맞다고 강력하게 확신하고 있었는데,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저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분명히 전문적인 책에서 읽었던 것이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어느 날 보니 그게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저 같은 경우는 신학적인 부분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신학에 있어서는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시대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굳이 전문적인 신학이 아니더라도 성경과 관련된 것에 관해 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있다.

예전에 설교 중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야고보서의 저자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이다.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가 기록되기 전에 순교하였다.

그런데 이름이 똑같은 데다가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보다는 사도 야고보가 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목사님들 중에서도 착각해서 잘못 말씀하시는 분이 간혹 있다.

그렇다 보니 그 말을 들은 일반 성도들은 당연히 그런 줄 아는 성도님들이 꽤 있다.

마리아의 경우도 마리아라는 이름이 하도 많이 나와서 이 마리아와 저 마리아가 헷갈리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크게 작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 꽤 있다.

예전에 제가 제 친구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며 그 친구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가려 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가 설명하겠다고 해서 그냥 갔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일 차선으로 붙으라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친구 말대로 일 차선으로 차를 붙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다급하게 자꾸 아니, 아니 일 차선으로 붙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일 차선으로 차를 붙이고 있는데, 자꾸 일 차선으로 붙이라고 말하니깐 자칫 사고가 날뻔했었다.

나중에 얘기를 해보니깐 이 친구가 차선을 거꾸로 알고 있었다.

그 친구가 왼손잡이여서 그런지 중앙선을 기준으로 밖에서부터 일 차선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한국 사회는 꽤 긴 시간 가짜 뉴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선거철이면 가짜 뉴스의 수위와 양이 감당 못 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나도 크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누구나가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개개인이 마치 언론사와도 같게 되었다.

그것으로 다양하고 많은 정보, 때로는 전문가들만 알고 있을 정보를 누구라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손쉽게 만들어지고 손쉽게 전파되고, 손쉽게 받아들여지다 보니깐.

너무 손쉽게 거짓 정보가 참된 것으로 되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짜 뉴스를 진짜인 양 잘못 알고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아는 것은 정말 좋은 힘이다.

아는 만큼 삶의 경지와 폭이 더 넓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른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 알면 엄청난 폐해를 초래하게 된다.

바른 것을 바르게 알고서 살아가는 삶과, 잘못된 것을 진짜라고 잘못 알고 살아가는 삶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현재 2024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대부분 경험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이 이와 관련된 것을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

본문 12절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그런데 본문 4절 역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본문 1~2절에서 유다가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4절에서는 주님께서도 알고 계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사용된 알다의 동사 원어는 동일하게 에이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에이도라는 단어에는 알다’, ‘깨닫다’, ‘보다’, ‘생각하다’, ‘느끼다’, ‘확신하다’, ‘말하다’, ‘이해하다등등의 뜻이 있다.

 

주님과 가룟 유다 모두 각자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알기는 알되 그 아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본문 2절을 다시 읽어 보겠다.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가 그곳을 알고 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배신자가 알고 있었던 그곳은 대체 어디인가?

그곳은 바로 겟세마네 동산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자들과 더불어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실 것이란 사실을 가룟 유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룟 유다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함께 최후의 만찬에 동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자리를 빠져나와, 대제사장으로부터 은 30을 받는 대가로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작정한다.

그 시간에 예수님을 잡아 넘길 최적의 장소가 바로 겟세마네 동산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성 내에서 예수님을 체포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다.

예수님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메시아로 알고, 예수님을 추종하는 예루살렘 군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큰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겟세마네 동산은 그렇지 않았다.

겟세마네 동산은 위치적으로 기드론 시내를 사이에 두고 예루살렘 성과 격리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밤중에 예루살렘의 군중들이 그곳에 있을 리 없었다.

예수님 주위에 사람이 있다면, 가룟 유다, 자신을 제외한 11명의 제자뿐일 것이다.

고작 11명의 제자쯤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일에 겟세마네가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가룟 유다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문 3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가룟 유다는 진리를 사모하는 자들을 데리고, 그 손에 예물을 들고 주님 앞으로 나아온 것이 아니다.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그 손에 병기를 움켜쥐고, 그렇게 주님께 나아왔다.

자신이 예수님을 팔아넘길 최적지로 알고 있는 바로 그곳, 겟세마네에서 군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생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가 알고 있었던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이었는가?

잘못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욕망의 방법, 욕망의 길이었다.

가룟 유다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재물을 향한 욕심일 수 있다.

아니면 좀 더 진보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의 의견처럼 정치적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일으키기 위한 자기 욕심, 자기 욕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이 어떤 것이었던지 간에, 그의 욕망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떨쳐 버려야 할 것이었다.

그는 잘못된 것을 진리로 잘못 알고 있는 자였다.

겟세마네 예수님 앞으로 다가가 예수님께 행한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추악한 욕망의 표현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었던지, 아니면 자기 생각을 이루고 싶은 욕심이었던지, 가룟 유다는 지금 오직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거룩한 행위로 크나큰 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가룟 유다의 몸은 주님 앞으로 나아가며 주님과 점점 더 가까워졌고, 결국 입맞춤까지 이루어졌지만.

하지만 가룟 유다의 마음은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멀어졌던 것이다.

잘못된 개인의 욕망과 진리는 결단코 양립할 수 없다.

가룟 유다는 잘못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진리로 착각했던 것이다.

 

가룟 유다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본문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당신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알고 계셨다.

그 배신으로 자신이 로마와 유대 병정에게 붙잡힐 것을 알고 계셨다.

이 세상 만민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당신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해야 함을 알고 계셨다.

그 십자가 위에서 당신께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 십자가 죽음의 때가 바로 지금임을 아셨다.

바로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바른 것을 바르게 알고 계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문 5~8.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계셨다.

모든 사람이 다 잠든 캄캄한 밤중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병기로 무장한 배신자 가룟 유다 일당 앞에 예수님은 홀로 서 계신다.

예수님께서 혈혈단신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 힘든 시간,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 주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생명 다해 따르는 예수님의 심령 속에 함께 하셨다.

 

가룟 유다도 알고 있었고, 예수님도 알고 계셨다.

하지만 예수님과 유다가 알고 있었던 것의 내용과 결과는 전혀 달랐다.

잘못된 것을 잘못 알고, 허망한 욕망을 움켜쥐었던 가룟 유다이다.

그는 은 30으로 자기 지갑을 불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더러운 배신자의 표상이 되었고, 자기 욕망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예수님은 참되고 바른 진리의 길을 바르게 알고 계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가장 처참하고 무력하게 죽으셨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깨뜨리셨다.

죽음까지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주, 만인을 위한 구세주가 되셨다.

 

오늘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바른 것을 바르게 알고, 그 바른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

생명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제대로 좇고 있는가?

혹시 잘못된 것을 진짜라고 잘못 알고서, 그릇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

가룟 유다와 같이 내 욕망의 길을 진리의 길로 착각하고 따르지는 않는가?

 

지금 내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세속의 가치를 좇고 있는 나의 이기적인 욕망인가?

 

말씀을 마무리.

성경은 감동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은혜를 주기 위한 책도 아니다.

성경은 즐거움을 주기 위한 책은 더더욱 아니다.

 

성경은 복음의 책이다.

성경은 진리를 전하는 책이며,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책이다.

성경은 주님의 말씀이며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책이다.

 

주님은 단 한 번도 거짓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그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그들에게서 많은 헌금을 걷기 위해.

가짜 뉴스를 말하며 사기를 친 적이 없다.

?

주님이 진리이고, 복음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에는 거짓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에서든지.

교회가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며, 목회자가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 욕망, 내 계획, 잘못된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예수님이 진리이시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목적이 되신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목적을 실현하면 된다.

결코 거짓말로 진리이신 주님을 향한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오직 진실한 믿음으로 진리 되신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진리 되신 예수님을 따라서 나 또한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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