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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00 친구의 외침

아브라함의 품 (누가복음 16:19-31)

by TwoTalents 2024. 3. 17.

 

제목 : 아브라함의 품

 

본문 : 누가복음 16:19-31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25.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 니라

26.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말씀 :

오늘 본문을 가리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라고 말한다.

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기독교인들은 익히 잘 아는 내용이다.

본문 19~2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어떤 학자는 이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본문에는 나사로의 이름은 있지만, 부자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 부자의 이름은 다이브스라고 한다.

본문은 다이브스라고 예상되는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그 삶의 결과를 말씀하고 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는 어느 시대, 언제 어디서나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도 거지는 있고, 일본에도 있다.

미국의 뒷골목 빈민굴에 가보면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고 한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 만들어지고 제대로 지켜지는 나라에도 거지는 존재한다.

이 세상에서 빈부의 격차가 완전히 해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또 하나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부자가 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는 거지가 다 착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오늘 본문 속의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 모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세상 살기가 너무 좋아서 하나님을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었던 그런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 많은 것 자체가 죄가 될 수는 없다.

부자는 자기가 소유한 재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이다.

 

모든 부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자들은 대체적으로 돈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살아간다.

값비싼 옷으로 나 잘살아요하고 표현한다.

외제 차나 호화 주택 등으로도 자랑을 한다.

자신의 경제적 여유를 수단으로 날마다 삶을 즐기며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여가를 기분 좋게 보낸다.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면 때를 맞춰 휴가를 떠난다.

일반 서민들은 감히 상상도 안 되는 생활을 누리는 부자들을 보고, 듣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부자들이 많이 가졌다는 것을 무조건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많은 부로 인하여 평생에 한 번도 하나님을 찾을 일도 없다면...

너무나 평안해서 구원에 관해 생각할 틈도 없을 정도라면.

어쩌면 그들이 풍요롭게 잘 산다는 것은 복이 아닌 저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에 비해 가난한 자의 상징으로 나오는 나사로는 삶은 비참하다.

나사로에게는 부스럼이라는 병이 있었다.

못 먹고 병원 가지 못하니 병이 떠날 틈이 없는 것이다.

무거운 질고를 지고 평생을 고통 하는 사람이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는 안타까운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사로의 모습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역시 삼성이나 엘지 등 대기업에게 속아서, 그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를 진수성찬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것도 없는 나사로는 의지할 것 없고, 그의 빈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을지 모른다.

만약 가난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면 그에게 가난은 오히려 반전의 축복인 것이다.

 

어쨌든 그런 중에 부자와 나사로에게 죽음이 찾아왔다.

본문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순서상 부자보다 나사로가 먼저 죽었다.

나사로는 죽었으나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어딘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다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자는 호화로운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육체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시편 90.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므로 성실하게 그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육신의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이 심판에 대해 예수님은 자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만 18회에 걸쳐 지옥을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도 간단하게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신다.

본문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평생을 잘 먹고 잘살면서 하나님도, 이웃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자는 음부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부자는 자신과는 다르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는 나사로를 보게 된다.

아브라함의 품은 당시에 천국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육신이 살아 있었을 때와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자는 간절히 간구한다.

본문 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하지만 이런 간구에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옥은 기도가 통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 한 방울의 자비도 베풀어지지 않는 곳이다.

부자는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 찍어 혀끝에 주시기를 간구했지만, 그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허락될 수가 없는 곳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쓴 카라마초프의 형제들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는 지옥을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지옥에서 붙는 불이 물질에 붙는 불이라면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 몸이 타는 불이라면 견디기 쉬울 것이다. 지옥의 불은 육체가 타는 곳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알지 못하는 불에 타는 곳이라서 그것이 육신이 타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아픔과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옥도 상황은 비슷하다.

뜨거운 불로 너무나 괴로운데 손끝의 물 한 방울조차 허락될 수가 없는 그런 곳이 지옥인 것이다.

 

또한, 지옥은 천국을 보면서도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다.

오늘 본문에는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천국에서 아브라함 품에 안겨있는 나사로를 뻔히 바라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는 천국을,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그곳을 향해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옥은 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곳이다.

부자는 자신의 육신이 살았을 때 지었던 죄가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었던 다섯 형제를 분명하게 기억했던 것이다.

본문 27, 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부탁한다.

형제들의 모습을 기억해 볼 때, 그대로 있다가는 지금의 자신과 똑같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옥은 소망이 없는 곳이다.

단테가 쓴 신곡에는 지옥 어귀에 쓰인 글귀라면서 이렇게 소개한다.

 

이곳을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릴지어다.”

 

예수님께서 지옥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모른 채 사는 사람들, 어리석은 사람들.

헛된 것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자기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

세상 낙에 빠진 사람들.

나중에 다 놓고 갈 수밖에 없는 것에 눈이 먼 사람들.

본문 속에 부자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지옥이 아닌 천국을 향하도록 오랫동안 노력하셨다.

수많은 역사를 보이셨다.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

바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지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으려고 아들을 희생시키셨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다.

내가 지옥에 가면 당할 고통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으로 대신 당하셨다.

예수님께서 지옥으로 나아가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8, 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하지만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천국을 준비하셨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복이 무엇인가?

요한은 계시록을 통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나라의 행복과 기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천국에 들어오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다.

돈을 바쳐라, 생명을 바쳐라, 자식을 바쳐라.

이런 황당한 요구를 하지 않으셨다.

안내자 역할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하셨다.

예수님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운명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말씀 마무리.

오늘 우리는 분명한 사실 하나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며, 우리는 두길 중 한 길을 가야만 한다.

그 길은 천국의 길과 지옥의 길이다.

죽음과 생명의 갈림길에 놓인 우리 운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바른길을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생명의 길, 천국의 길을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죽음의 길, 지옥의 길은 결단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천국과 지옥은 상징적인 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이 죽어서 실제적으로 가는 곳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믿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다.

우리가 힘써 전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 것을 다 잃고도 선택해야 할 것이 천국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할 곳이 지옥이다.

그 길과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천국이 있다.

영생이 있다.

참된 풍요가 있다.

이 진리를 기억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내가 모든 것을 잃더라도, 예수를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생명과 천국만은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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