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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60 베드로전서 묵상(I)

선.(베드로전서 3:2-12)

by TwoTalents 2023. 11. 28.

이미지 출처 -  Pixabay 'darkness'

 

제목 : 선.

 

본문 : 베드로전서 3:1~12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묵상 :

본문에서는 아내와 남편, 부부 사이에서와 지체들 사이에서도 선함을 지켜 행할 것을 권고한다.

특별히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했던가, 아니면 결혼을 했는데 자신만 복음을 받아들였던가 하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남편이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내는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이는 남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서는 더더욱 힘써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무작정 말로 요구하고, 강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베드로는 믿음이 있는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그 행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내들의 두려운 마음과 정결한 행실을 남편이 허투루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아내의 외모로 남편을 인도하려 하지 말 것을 종용한다.

오직 마음의 아름다움으로 온유하며, 안정한 심령으로 남편에게 감동을 주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베드로가 살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 시대에는 여성이 남편의 허락도 없이 다른 종교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던 시대이다.

남편과 아내는 결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던 시대이다.

남편이 그리스도를 믿지 말라고 하면, 쫓겨날 것을 각오하지 않은 이상 기독교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일단은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살살 달래서 아내의 독자적인 신앙생활에 대해 큰 불만을 품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그런 다음에 복음을 전하긴 전하는데, 행동으로 삶의 모습으로 전하라는 것이다.

? 말로는 전할 수도 없다.

당시의 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본문을 빗대어 믿는 아내들에게 믿지 않는 남편, 핍박하는 남편에게 일단 순종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여러분 될 것 같은가?

사람마다 다르니깐 될 수도 있는데, 안 될 가능성이 훨씬 클 것이다.

부부 관계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저는 이 말씀을 믿는 아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불신자 남편을 복음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만 이해하면, 현대의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말씀이 되어 버린다.

본문 6절에서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비교하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와 불신자 남편의 아내를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는가?

베드로의 강조점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베드로는 2장에서 사환들에게 억울한 중에서도 선을 행하며, 악을 선으로 갚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을 시작할 때, ‘아내들아 이와 같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는 헬라어로 호모이오스라는 단어로 유사하게’, ‘같이’, ‘그렇게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깐 사환들이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처럼 선을 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그것과 유사하게, 그렇게 아내들도 선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불신자 남편과 같이 살고 있고, 그가 믿음에 대해 핍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열 받아서 믿는 내가 똑같이 악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신자 남편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이다.

그가 나를 악으로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선을 행하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면, 그녀는 바로 사라의 딸,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불신자 남편 때문에, 핍박하는 남편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선하게 살려는 내 마음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것은 믿음의 남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내를 상대로 선한 마음과 선한 행동으로 함께하여야 한다.

아내를 연약한 자로 생각하며 보호해주어야 한다.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은 자로 동등하게,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막히게 될 것을 경고한다.

아내를 향하여 선을 품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부부끼리는 이렇게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서로 살 길이다.

 

이어서 베드로는 부부 사이를 넘어 모든 지체를 향해서 선을 행해야 함을 전한다.

먼저 믿음의 형제, 자매에게 마음으로 선을 품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다음은 나를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도 선한 모습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악을 행한다고 똑같이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나도 욕먹은 그대로 돌려주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악을 용납하고, 욕을 허용하라는 말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악을 행할지라도, 나는 나의 선함을 지키라는 말이다.

도리어 그들을 향해 복을 비는 것으로 예수께서 보이신 사랑의 극치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적자를 위해 빌었던 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이 이렇게 고난 중에도, 핍박 중에도, 억울한 중에서도 선한 마음을 지키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베드로는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전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생명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바라라는 사람들이다.

주님은 그런 자들의 혀를 통해 악한 말이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오직 악에서 떠나서 선을 행하고, 모든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구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끝까지 선함을 지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인들의 악행에도 멍청히 당하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멍청한 모습이 아니다.

어떤 유혹에서도, 어떤 시련에서도 나를 지키는 놀라운 믿음이다.

베드로는 분명히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함을 지키는 의인을 바라보시고, 그 의인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시다.

믿는 자의 억울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결단코 악인들의 악행을 간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악행하는 자들을 바라보시고 그들이 죄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베드로전서 213절부터 오늘 본문인 312절까지 말씀의 핵심은 분명하다.

예수님처럼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행실을 행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선한 마음과 선한 행실은 내가 편할 때, 내 마음이 여유로울 때,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때.

그때 선함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다.

그럴 때는 누구라도 선할 수 있다.

베드로는 고난 중에, 핍박 중에, 억울한 중에, 부당한 통제를 받는 중에, 불의한 공격을 받는 중에.

도저히 선한 마음과 선한 행동을 하라고 권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행동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나를 공격하는 상대를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생명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내가 한층 더 주님을 닮고, 주님 앞에 서기에 더욱 합당하게 되기 위함인 것이다.

나를 공격하는 이를 위해 복을 빌어주는 것, 세상의 기준에서는 그것보다 더 어리석은 모습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를 믿는 사람은 잘 알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던, 주님의 위대한 승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 복을 빌어주는 것이 곧 나의 승리이다.

그런 나를 위해 주께서 놀라우신 축복을 예비하셨다고 약속하셨다.

 

나를 괴롭히는 자 때문에 나를 망가뜨리지 말자.

나에게 사사건건 시비 거는 자 때문에 내 입술과 행동을 더럽히지 말자.

그럴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를 지켜서, 적어도 나에게 악으로 덤벼드는 그와는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자.

그것이 바로 부인할 수 없는 놀라운 승리인 것이다.

 

그 어떤 유혹에도 입술을 지킬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 어떤 핍박에도 선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나이길 기도한다.

그 어떤 악한 공격에도 똑같이 악으로 갚지 않고 선함으로 맞받아쳐서 완벽한 승리를 이루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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