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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59 행동하는 믿음-야고보서(I)

참으라, 굳건하게 하라.(야고보서 5:7-12)

by TwoTalents 2023. 10. 22.

제목 : 참으라, 굳건하게 하라.

 

본문 : 야고보서 5:7~12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서 계시니라

10.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12.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 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말씀 :

이제 야고보는 처음 말씀으로 돌아가 다시 인내를 전한다.

오늘 본문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 참고 견디는 것에 관한 말씀이다.

당시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은 가난했었다.

그들은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일이 흔했다.

믿지 않는 부자들뿐만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인 부자에게도 착취당하였다.

거기다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 장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길이 참을 것을 권면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참고 인내하라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이 어려운 중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야고보 장로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가 힘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먼저 야고보 장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주님의 강림이 이루어지기까지 참고 기다릴 것을 권면한다.

본문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당시 성도들의 기다림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다.

앞서 밝혔듯이 고난과 고통이 수반된 기다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는 그냥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고 참으라라고 표현한다.

참으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아픔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픔이 있는데도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고통 속에서도 시련을 견뎌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농부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역사에는 질서와 절차가 있음을 밝힌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대도 마구잡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농사에 맞는 질서와 절차가 있다.

그리고 그 질서와 절차에 맞게 농사가 진행된 다음에는 열매가 맺어지기까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릴 줄 아는 농부의 인내가 있어야 한다.

농부가 재촉한다고 가을에 수확해야 할 농작물이 봄이나 여름에 수확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성급하게 서두른다고 더 빨리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은 재림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절차들이 있다는 것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바탕으로 한 기다림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야고보 장로는 온전히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 반드시 믿음의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을 전하고 있다.

 

야고보 장로는 길이 참을 것과 함께 마음을 굳건하게 할 것을 주문한다.

본문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본문의 굳건하게 하라는 헬라어로 스테리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확고히 하다’, ‘고정하다’, ‘확립하다’, ‘확고부동하게 고정하다’, ‘강하게 하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확고부동하고, 강한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의심하지 말고, 세상의 고난과 고통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이제 가까워졌다고 고백한다.

이 글을 기록할 때만 하더라도 야고보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수도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고보나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재림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장 내일이라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수 있다는 야고보의 믿음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신앙의 자세라는 것이다.

 

지난주 말씀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말세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시대가 말세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는가?

예수께서 언제 오실지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짜를 정확하게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내일 오실 수도 있고, 1년 뒤에 오실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라도 오실 수 있기 때문에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 오셔도 우리는 할 말이 없고, 1년 뒤에 오셔도 왜 하필 그때 오시는 것이냐고 불만을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는 당장 내일 오시더라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믿음의 삶을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서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야고보는 성도들의 믿음의 삶으로 믿음의 형제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말한다.

본문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처럼, 야고보 장로는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서로 원망하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다툼이 있다는 말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를 향한 원망이 없으려면 서로가, 양쪽 모두가 노력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이다.

교회 공동체는 몇몇 사람의 배려와 몇몇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물론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배려하고,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를 돕는 것이 마땅한 모습이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자가 계속해서 그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반드시 성장해야 하고, 믿음이 성장했다면 자신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재물의 많고 적음은 주께서 허락하신 부를 함께 나누는 것이지, 이것은 희생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나눔을 받는 사람은 마땅히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 마치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 내 것을 베푼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아예 나누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랑하는 것은 과시가 아니다.

진실로 한 영혼을 순수하게 위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상대가 원망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주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심판 주가 바로 문밖에 서 계신다고 고백한다.

이는 앞서서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워졌다고 고백한 것과 같은 맥락의 고백이다.

그러면서 주께서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심을 밝히는 것이다.

주님은 멀리 계셔서 우리의 삶을 까마득히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다.

바로 문밖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고보는 인내가 필요한 성도들에게 옛 선지자들의 삶을 본받으라고 전한다.

본문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때문에, 사람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함을 실천하는 것 때문에 대적자들에게 공격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인내하였다.

주께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의 사명을 당당히 감당하며 주님의 역사를 인내하며 기다렸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자, 다윗의 자손을 전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생전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내함으로 믿음을 지켰다.

결국, 그리스도는 베들레헴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이어서 야고보는 특별히 욥의 인내를 소개한다.

본문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은 가장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가장 강한 비난을 받았던 사람이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 가장 사랑했던 아내가 욥의 고난을 비난했던 것이다.

 

하나님께 허락을 받은 사탄이 욥을 괴롭혔다.

욥의 모든 재산이 사라져 버렸고, 그의 자녀들도 죽게 되었다.

욥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거기다가 욥의 몸에 종기가 생겨 질그릇 조각으로 온몸을 긁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럴 때 욥의 아내가 욥의 염장을 지르는 것이다.

욥기 28, 9.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위로를 해도 욥이 정신을 차릴까 말까, 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욥의 아내는 욥을 향해 어떻게 이런 일을 당했는데도 하나님께 원망 한번 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비난을 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다 죽었는데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온전함만 지키고 있는 무정한 아버지라고 욕을 퍼붓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라리 나가 죽으라고 저주한다.

 

믿었던 친구들도 위로하는 척하면서 욥을 비난한다.

욥에게 숨겨놓은 죄를 고백하라는 것이다.

욥이 아닌 척하지만, 죄를 짓지 않고는 이런 고통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한 어려움에 대해 위로하는 척할 뿐, 실상은 그의 잘못을 들춰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욥은 무너지고 말았다.

간신히 지키고 있던 마음이 무너져 하나님을 원망하고 말았다.

입술로 하나님을 향해 범죄하고 말았다.

하지만 야고보는 욥이 인내하였다고 소개한다.

그것은 욥이 결국에는 주님 앞에 다시 무릎 꿇고, 다시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이다.

흔들렸던 마음이 마지막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야고보는 욥의 결말을 말하며, 인내함을 보여주었던 욥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음을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결단할 것을 촉구한다.

본문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본문 12절은 앞의 내용이나 뒤이어 나오는 내용을 볼 때 상당히 뜬금없어 보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앞뒤 내용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부분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을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12절을 앞의 내용과 연계해서 해석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본문 12절은 마태복음 5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그러니깐 야고보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절대로 맹세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었다.

무가치한 맹세, 헛된 맹세, 지키지도 못하고 지킬 의지도 없는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특별히 행하는 맹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평소 삶에서 지키고 실천하며 살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본으로 맞는 것은 맞다고 말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면서 정직하게 살면 된다는 말이다.

 

야고보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헛된 맹세로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되면 그렇다고 말하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니라고 입장을 분명하게 하라는 것이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맞는 것은 맞다고 말하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 속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용기 있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야고보는 인내를 말하고 있다.

당시의 상황에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 때문에 당해야 했던 불이익, 고난을 인내하며 참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야고보의 말처럼 인내함으로 마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결단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오가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호한 결단으로 그리스도가 맞다고 고백하고,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고 말하며 오직 주님만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 여러분.

날이 거듭되고, 말씀이 거듭될수록 우리가 신비한 하나님의 시간을 더욱 깨달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세상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힘들어하는 우리를 주께서 돌아보고 계시는지?

지금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도대체 주님은 언제 오려고 하시는 것인지?

고난으로 인해, 고통으로 인해, 세상의 공격으로 인해 품을 수밖에 없었던 주님의 뜻을 향한 수많은 의문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주님의 시간으로, 주님의 세계로 넘겨서 오직 인내함으로 참으며 주님을 기다릴 수 있는 우리 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을 굳세게 하여 천국을 소망하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결단하며 오늘도 인내로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주님의 강림이 가까워졌다.

그때까지 주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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