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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구약)/01 창세기 묵상(I)

유다의 진심.(창세기 44:18-34)

by TwoTalents 2023. 9. 17.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제목 : 유다의 진심.

 

본문 : 창세기 44:18~34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묵상 :

요셉이 청지기를 시켜 숨긴 은잔이 베냐민의 짐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것으로 베냐민과 형제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애굽 총리 요셉은 은잔이 자루에서 나온 베냐민만 남고 다른 형제들은 가나안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에게 있어서 베냐민 없이 가나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에 넷째 유다가 나서게 된다.

본문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아무도 선 듯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다가 애굽의 총리 앞에 나선다.

이것은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다.

자칫 베냐민을 살리기는커녕 형제 모두가 노예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유다는 나설 수밖에 없었다.

? 만약 베냐민을 살리지 못하고, 그를 아버지 야곱이 있는 가나안으로 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자리에서 다 함께 죽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다는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노력하고 있다.

 

유다는 애굽의 총리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을 간청한 다음, 은잔을 훔친 자로 지목된 베냐민이 왜 돌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게 된다.

본문 19~31.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유다의 긴 설명의 핵심은 단순하다.

만약 자신의 동생, 베냐민을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자신의 아버지가 온전히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야곱은 이미 이전에 자식을 잃는 경험을 하였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이 시킨 심부름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 이후로 아버지 야곱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슬픔을 안고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이 죽은 아들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마저 잃게 된다면, 아버지 야곱은 그 자리에서 스러지던지, 화병으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음을 설명하며 애원하는 것이다.

어느새 유다는 불만의 이유였던 아버지의 편애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를 살리려고 노력한다.

유다는 자신의 동생 베냐민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단순히 가족 중 한 사람이 없어지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가족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엄청난 위기임을 인식했던 것이다.

 

이에 유다는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죄의 대가를 감당하겠다고 고백한다.

본문 32~34.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자신을 희생하려고 한다.

베냐민만 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았을 때의 유다와는 너무나도 변한 모습이다.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동생을 팔아버리고, 그 동생이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했던 유다와는 전혀 딴 사람인 것이다.

이런 가족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인하여 유다의 진심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야곱이 베냐민을 절대로 보낼 수 없다고 했을 때도, 유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베냐민을 지키겠다고 고백하였다.

야곱은 그런 유다에게서 진심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으로 베냐민을 유다와 함께 애굽으로 보낼 것을 결심하였다.

뒤에 나올 내용이지만, 오늘 본문에서도 유다는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 베냐민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을 애굽의 총리, 요셉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야말로 나의 진심을 전하는 가장 확실하고 아름다운 방법임을 기억하자.

예수님께서 이미 나에게 보이신 놀라운 사랑이다.

자신의 몸을 내어놓으시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으로 죄인 된 모든 인간을 구원하셨다.

그의 핏값으로 사람들의 죗값을 치르신 것이다.

세상에서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존재도 피조물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직 예수님만이 실천하신 놀라운 은혜, 아름다운 사랑이다.

나는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배우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확실한 방법은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교회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믿는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 보다 교회가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야만 한다.

 

오늘의 묵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라는 이름으로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세상을 향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이 깨달음으로 나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주님의 향기가 날마다 날마다 세상을 향해 퍼져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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