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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사도행전 28:16-31)

by TwoTalents 2023. 7. 16.

제목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본문 : 사도행전 28:16-31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 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 아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없음)

30.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말씀 :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이다.

오늘로써 사도행전 설교는 끝이 난다.

사람이교회202171일부터 시작되었고, 다음 둘째 주인 711일부터 사도행전 설교를 시작했었다.

그러니깐 2년 만에 사도행전 나눔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오늘은 결국 사도행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마지막 시간 인만큼 사도행전 나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깨달음이 우리에게 주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바울과 친구들은 드디어 로마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PPT 바울이 로마 이송 경로]

참으로 험난한 여정을 지나왔다.

그동안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들로 인해 비록 죄수지만 바울은 함께 항해했던 사람들에게 신뢰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로마에 입성하고 곧바로 드러나게 된다.

로마로 입성한 바울은 죄수이면서도 꽤 자유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본문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재판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죄수인 바울에게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곁에서 지키는 군인 한 사람만 있을 뿐, 감옥이 아니라 일반 집에 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밖으로 다니는 것까지는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아주 자유로웠다.

누구라도 바울이 머문 집에 방문하면 다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는 것에 총책임을 맡았던 백부장 율리오에게 신뢰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유대인들의 무리한 기소였고, 로마 이전에 마지막 재판을 진행했던 총독 베스도의 보고서에도 바울이 로마에 해가 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로 온 목적이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로마에 오자마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혹시 독방에라도 있게 된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닥치는 것이다.

그런데 죄인임에도 감옥이 아닌 일반 집에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특별한 제약이 없었다.

참으로 기막히고 놀라운 일이다.

 

이런 혜택을 받은 바울은 로마에 입성한 지 사흘 후에 곧바로 유대인들을 초청하여 만남을 가진다.

본문 17~20.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앞서 말 한대로 바울이 밖으로 활동하는 것에는 제한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중에 높은 사람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초청했던 것이다.

이들은 로마에 있는 각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말한다.

바울은 그들이 혹시라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통해 자신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럴 경우, 예루살렘에서처럼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에 큰 방해를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이송되기까지 과정을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자신은 무죄이고,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족을 사랑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걱정과는 달리 로마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바울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본문 21~22.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본문의 편지는 문서화된 보고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하든지는 공식적인 알림을 말하는 것이고, ‘이야기한은 사적인 알림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로마의 유대인들은 문서든 비문서든,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바울에 대해서 어떤 내용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바울에 대한 재판이 로마로 이관되면서 이 송사에 대해서 예루살렘 유대인들이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로마의 유대인들에게 바울에 대해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의 모습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보였던 행동만 본다면 로마까지라도 쫓아올 기세였다.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바울에 대해서 로마 유대인들에게 알릴 수 없었던 내부적인 혹은 외부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에 대해서 듣지 못했던 로마의 유대인들은 바울이라는 사람보다는 바울이 전하고 있는 사상, 즉 예수의 복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복음이 여기저기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과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었는데, 마침 바울이 초대를 한 것이다.

그래서 그에 응하여 바울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러니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 걸림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가장 큰 두 가지 걸림돌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죄수이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이 자유로웠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당했던 모함을 로마에서는 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오히려 예루살렘에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방해받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울은 사람들과 아예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본문 23, 24.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강론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였다.

그리고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가 예수님임을 증거하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전해왔던 복음이며,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세례 요한(침례 요한)의 증거와도 일치한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된 곳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로마에서도 전해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본문 25~27.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아마도 바울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보다,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불신에 대해서 이사야 6장 말씀을 인용하며 비판한다.

예수님도 복음서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다.

이사야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완악함과 교만함 때문에 스스로 눈과 귀를 막아버린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그런데 바울 시대에도 똑같다는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이 완악함과 교만함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바울의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복음을 제대로 정했다면 삼천 명 오천 명 막 회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직접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나뉘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앞서 말한 대로 이사야서를 인용하신 것이다.

진리의 말씀 앞에서 어차피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나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것은 비율적으로 어느 쪽이 더 많고 적으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것으로 복음 전파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 한 명이라도 복음으로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성공한 사역이다.

아니 열매가 없다고 하더라도 진리의 말씀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전하였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역은 멋있게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전하였는데도 믿지 않는 자가 더 많아서.

그래서 실망하고 지쳐서 복음 전파를 멈춰버렸다면.

그랬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실패한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지고 만 것이다.

마음 깊숙이 숨겨둔 세속적 성공을 이루고 싶은 마음, '욕심'에게 진 것이다.

철저하게 실패한 것이다.

반면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끝까지 복음을 전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말씀을 선포한다면.

나의 사명은 씨를 심고 물을 뿌리는 것일 뿐,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승리이고 최고의 성공이다.

불신자가 더 많은 것 때문에 멈추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전략과 전술을 바꾸어 더 충성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성공이다.

 

바울도 맡은 자에게 구해야 할 것은 충성이라고 고백하였다.

그 고백처럼 실망스러운 결과 앞에서도 바울은 멈추지 않았고 끝까지 충성하였다.

오히려 바울은 유대인들의 불신을 보며 이방 선교에 대한 당위성을 정립한다.

본문 28, 29.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앞에서 봤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깐.

그 복음이 거부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이방인에게 보내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부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합당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바울의 이 말을 이스라엘 민족이 복음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방 민족에게 복음이 전하여진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는 원래 이방 민족을 구원하실 계획이 없었는데.

선민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을 대체해서 이방 민족을 선택하시고 구원받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방 민족을 향한 구원도 원래 하나님의 뜻이다.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신 것은 맞지만, 우리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시다.

창세기 때부터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을 말씀하셨고, 예수님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이스라엘과 복음을 수용하는 이방 민족을 대비하면서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방 민족을 향한 복음 전파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것이다.

 

어쨌든 바울은 이러한 모습으로 2년 동안 로마에서 계속 복음을 전파하였다.

본문 30, 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여기에는 바울이 감옥이 아닌 본문에서 셋집이라고 표현된 일반 집에서 머물 수 있었던 것과 유대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함께하였다.

바울은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옥중서신이라고 불리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와 개인 서신인 빌레몬서를 이 시기에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사역이 마무리되거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마지막을 그리면서 끝나지 않는다.

바울의 변하지 않는 사역과 계속되는 복음 전파를 말하고 있다.

닫힌 결말이 아니라 열린 결말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 감금된 지 2년 뒤 감금에서 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그는 곧이어서 4차 전도 여행을 진행하였고, 그때 당시 세상의 땅끝으로 인식되었던 서바나, 즉 스페인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한다.

바울 역시 자신의 사역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했던 것이다.

 

사도행전의 열린 결말은 바울의 이후 사역을 거쳐, 바울 다음 세대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 감당되어야 하는 지상명령, 말 그대로 가장 중요한 명령인 것이다.

사도행전을 통해 주님의 명령을 이어나갈 오늘날의 우리는 소망과 담대함을 얻게 된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과 함께하며 고난 속에서도 기뻐함으로 나아갔던 믿음의 사람들의 승리를 보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

 

지리적으로만 본다면 이제 예수님의 복음은 땅끝에 닿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예 예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영혼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는 주님의 명령은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바로 지금 땅끝을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외쳐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사도행전을 통해 오늘날의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엄중하고 귀한 주님의 명령이 나의 귀에 들리는가?

 

주님의 명령이 들리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며, 내가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복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의 명령, 바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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