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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4 복음, 땅 끝을 향하여-사도행전(I)

마중 나간 사람들.(사도행전 28:11-15)

by TwoTalents 2023. 7. 16.

제목 : 마중 나간 사람들.

 

본문 : 사도행전 28:11~15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말씀 :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하던 바울 일행은 풍랑으로 인해 바다 위를 표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가까스로 멜리데라는 섬으로 상륙하게 된다.

다행히 배에 타고 있었던 276명의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상륙하여 구조될 수 있었다.

멜리데의 원주민들은 구조된 사람들을 특별한 동정으로 보살펴 주었다.

바울의 사역은 이곳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멜리데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울이 그 사람의 아버지가 걸렸던 병을 고쳐주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나고 바울 일행은 다시 로마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문 11, 12.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이전에 바울이 탔던 배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기상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항해를 감행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반대했지만, 당시만 해도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던 백부장이 무리하게 배를 띄웠던 것이다.

그러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고, 그 광풍으로 인해 바다 위에서 표류를 했던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았다.

항해하기 위험한 시기가 지나도록, 겨울이 지나가도록 석 달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 후에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다시 로마를 향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알렉산드리아 배의 머리에 장식된 디오스구로는 올림푸스 12신 중 신들의 왕인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레다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 ‘폴룩스카스토르를 나타내는 문양이라고 한다.

이 쌍둥이 신은 항해의 수호신으로 여겨졌었다고 한다.

 

디오스구로

멜리데를 떠나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시칠리아의 수도인 수라구사라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흘을 정박하게 된다.

이후에 항해는 순조롭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본문 13, 14.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바울의 이송 경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재개된 항해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수라구사에서 이달리야 반도의 끝에 있는 레기온으로, ‘레기온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시 보디올로 이동하며 바울은 점점 로마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디올은 오늘날 포추올리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나폴리만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로마까지는 불과 240km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다.

여기서부터는 배가 아닌 도보로 로마까지 가게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만큼 당시 로마의 도로는 발달 되어 있었다.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이미 로마와 이탈리아 남동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브린디시를 연결하는 도로인 아피아 가도가 건설되었었다.

바울은 이 아피아 가도를 통해 로마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피아 가도를 통한다면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건강한 장년 남성이 도보로 5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피아 가도(로마시대 도로)
아피아 가도의 경로

그런데 바울은 보디올에서 뜻밖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곳에서 믿음의 형제들,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본문에는 바울이 형제들을 만나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믿음의 형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황상 이들은 바울에 의해 전도된 사람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단지 오순절 성령 사건 때,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이들 중에 변화를 받은 다음 보디올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형성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로마 교회 성도들과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들은 3년 전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로 보낸 편지(로마서)를 로마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바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들의 초대로 7일 동안 그들과 함께 나눔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바울은 여전히 죄수의 신분이다.

이런 일은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는 것에 대한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 그 율리오의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율리오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바울은 죄수이면서도 백부장 율리오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있었던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보디올에서의 이 만남은 로마로의 입성을 목전에 둔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렇게 알지도 못했던 믿음의 형제들까지 바울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바울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며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보디올의 형제들과 7일 동안의 기분 좋은 나눔을 가진 다음 다시 로마를 향해 나아갔다.

본문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그런데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로마 교회의 형제들이 바울이 오는 것을 알고 먼저 마중을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아마 보디올의 형제들이 바울이 자신들과 7일 동안 머무르고 있을 때.

그때 사람을 로마로 미리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로마 성도들에게 바울이 로마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던 것 같다.

첫 번째 마중은 압비오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는 트레이스 타베르네에서 바울을 맞이하였다.

이렇게 환영단을 2차에 걸쳐 준비할 정도로 로마의 성도들은 바울과의 만남을 기뻐했고 기대했던 것이다.

바울 또한 마중 나온 로마의 형제들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였다.

무엇보다 이들을 통해 담대한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바울이 어떤 이유로 담대한 마음을 얻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마도 바울을 위한 기도회나 예배 같은 특별한 나눔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2번이나 먼 길까지 바울을 마중 나온 것 자체가 바울에게는 기쁨이요 힘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로마 성도들과의 만남이 바울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보디올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울은 로마 입성 직전에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새로운 믿음의 형제들과의 함께 함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로마로 입성하기 전에 기분 좋은 마음, 담대한 영적 상태, 확신하는 믿음으로 로마에서의 사역을 준비할 수 있었다.

 

말씀을 마무리.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느냐 아니냐는 그날의 컨디션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컨디션은 어떤 사람의 현재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깐 선수의 당일 컨디션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 선수 마음의 상태, 몸의 상태가 모두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당일의 컨디션이야말로 그날 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운동선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일의 결과가 많이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사역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그날의 컨디션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의 상태 말고도 컨디션을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상태, 몸의 상태와 함께 영의 상태가 어떠한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니깐 믿는 자의 컨디션이 좋아지려면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의 상태가 다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영의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예전에 제도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다른 목회자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하나 있다.

목회자의 가장 큰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말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목회할 때, 목회자를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 제일 큰 방해 거리가 되는 사람은 남이 아닌 바로 가족이라는 말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자주 봐야 하는 가족인데, 그들이 목사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설교와 관련해서는 가족들이 거의 대적자 수준으로 방해한다고 말하는 목사들도 있었다.

이상하게 설교를 준비해야 할 시간만 되면 아내와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토요일에는 유난히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주일 아침만 되면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지고, 그것 때문에 듣는 남편 목사는 예배 전에 벌써 짜증 난 마음으로 예배당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가장 예민할 시간에 신경 거스르게 하는 것이다.

가장 평안한 마음 상태에서, 가장 건강한 몸으로, 가장 깊은 영성을 가지고 준비해도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설교이다.

그런데 싸우고, 열 내고, 짜증 내고.

그런 상태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그 말씀을 예배 시간에 설교한다면.

그것이 제대로 준비되고, 제대로 전해지겠는가?

 

그런데 실상 토요일이나 주일 아침에 가족이 작당하고 남편의, 아빠의 말씀 준비와 설교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평일과 별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너무나 민감해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것 아닌 말과 작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만큼 영적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토요일부터 주일 예배 전까지 아예 집에 안 들어간다고 한다.

말씀 준비하기 위해 노트북이랑 자료 들고 나가서는 예배 때까지 가족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다.
영의 상태, 영적 컨디션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의 입성하기 전에 최고의 영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육체의 상태는 정확하지 않다.

풍랑으로 인해 육체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이다.

시간이 지났지만, 회복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바울의 마음과 영혼은 그렇지 않다.

그의 마음과 영의 상태는 최고라는 할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 풍랑에서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을 믿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은 확신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로마로 입성하는 마지막 여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 큰 위로를 얻게 된 것이다.

자신을 통해 전도된 사람들도 아니고, 이전에는 알지도 못했고, 만난 적도 없었던 형제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바울을 만나기 원했고, 그를 기다렸으며, 함께 동행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만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믿음의 형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려운 사역을 앞두고 있을 때, 예상치 못했던 믿음의 형제, 자매의 격려는 너무나 큰 힘이 된다.

당연히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나를 믿어주고, 나를 격려하며, 나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 주는 믿음의 형제, 자매가 있고, 그 사실을 내가 알게 된다면.

한 번 더 기뻐하고, 한 번 더 담대함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기쁨과 담대함이 확장되는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바울이 믿음이 적은 자인가?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복음 전하다가 죽게 될지도 몰라서 몸 사리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그가 로마를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마중 나온 형제들을 통해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전 바울에게 담대함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여전히 담대한 바울이 믿음의 형제들로 인하여 한 번 더 담대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담대함이 확장되는 것이다.

 

바울은 참 위대한 사도이다.

그런데 그의 사역은 결코 혼자 잘나서,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이끄신 것이고.

더불어 여러 곳에서 여러 모양으로 함께했던 수많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핍박받고 고통을 당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주었고, 위로하고, 중보해 주었다.

그들로 인해서 어렵고 힘든 중에도 최고의 영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 공동체 여러분.

바울과 같은 사람은 너무나 귀한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역자는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바울을 마중 나간 사람들도 너무나 귀한 사람들이다.

바울과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마중 나간 형제들과 같은 사람들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바울과 같은 사역자와 그를 마중 나갔던 형제들과 같은 성도들이 함께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온전히 이루어짐을 믿고 확신한다.

사람이교회와 함께 예배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또한 바울을 마중 나가서 그를 위로하고 담대함을 주었던 믿음의 형제, 자매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될 수 있기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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