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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7 절기

[부활절]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by TwoTalents 2023. 4. 10.

 

제목 : 다 이루었다.

 

본문 : 요한볼음 19장 30절

30. 예수께서 신포주룰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말씀 :

오늘은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이면서, 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 판타지 영화와도 같은 사실을 기억하는 날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 내려와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행하셨던 모든 사역의 마침표와도 같은 사건이다.

또한, 기독교와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거룩한 사건이다.

오늘 하루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부활의 그 위대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지내셨던 마지막 일주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일주일과 함께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일주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이전의 모습과 변함없이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능력을 보이시고, 소외된 자를 사랑하셨다.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계셨지만, 별다른 동요 없이 묵묵히 자신의 할 바를 행하셨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간이기에 가져야만 했던 극한의 두려움을 겟세마네에서 기도로 극복해 내셨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은 기다리시고 바라셨다.

 

아꼈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은 은 삼십에 팔려 유대 병정들에게 붙잡히신다.

그리고 구약의 예언대로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신다.

그곳에서 벌거벗긴 채,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팔과 다리에 못 박힘을 당하신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상태에서 하신 말씀이다.

통상적으로 성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7언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의 말씀은 그중에서 6번째 말씀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시기 바로 전에 하신 말씀으로 본다.

특별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33여 년의 자신의 생애, 특히 공생애 3년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선포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며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한다.

죽음 직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가지 유언을 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유언장을 미리 작성했다 하더라도 쉽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작지만, 확신의 찬 목소리로 선포한다.

 

다 이루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무엇을 다 이루었을까?

도대체 무슨 대단한 일을 이루어 냈길래 이런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 그들 앞에서 다 이루었노라고 선언할 수 있었을까?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

또는 무언가를 이루었다라고 인정되는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예수님이 이뤄낸 것은 무엇인가?

냉정한 눈으로 예수님을 보면, 과연 그의 인생은 어떠한가?

예수님은 실패자이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실패자의 인생을 살았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2천 년 전 유대의 기준으로 보았어도 그는 완벽한 실패자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살았던 삶은 성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허물어질 것 같더라도 집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안정적이다.

물론 요즘은 다르다.

최고급 시설의 병원이 좋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최소한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셨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서 자신을 죽이려는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가야만 했다.

이집트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신 예수님은 갈릴리라는 작은 시골에서 거의 모든 생을 보내셨다.

갈릴리는 보통의 유대인들이 가짜 유대인이라고 조롱하면서 사마리아만큼이나 업신여기는 동네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칭송할 때 어떤 이들은 갈릴리에서 뭐 선한 것이 날 수 있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그들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리니깐 출신 적으로 아주 형편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요즘 예수님에 관한 연구가 더 많이 이루어져서 조금은 다른 의견이 있긴 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일반 서민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혹은 회당에서 받은 교육이 전부일 것이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거기서 조금 더 보탠다면 예수님께서 함께한 분파로 예상되는 에세네파의 교육이 전부일 것이다.

그가 사용했던 언어도 사투리인 아람어가 전부였다.

당시에는 헬라어가 세계어였다.

지금의 영어와도 같은 위치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저기 시골구석의 한동네, 갈릴리의 아람어 사투리만을 사용할 뿐이다.

예수님의 직업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은 백수였다.

잠깐 육체의 아버지인 요셉의 가업을 이어 목수 일을 하셨다.

하지만 그것도 하기 싫다고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그만둬 버린다.

30대의 청년 실업자이다.

뿐만 아니라, 함께 다니던 친구들을 꼬드겨서 그들도 직업을 모두 내려놓게 해버렸다.

그렇게 백수 집단을 만들어 함께 어울려 다니신 것이다.

 

예수님이 돈은 많았는가?

백수가 무슨 돈이 있는가?

예수님은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다.

일도 하지 않았고 자신을 쫓아다녔던 여인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셨다.

예수님과 함께한 백수 집단이 다 그랬다.

지금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이 자신의 모든 재산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죽는 순간에 로마 병정들에게 뺏기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갈기갈기 찢어져 나누어진다.

예수님은 철저한 가난뱅이였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학벌이 좋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부하지 않거나, 남들보다 앞서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키우기 위해 오늘도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친구를 만드는 데에 여념이 없다.

바로 인맥이다.

실제로 순수하게 인맥만으로 성공한 사례가 요즘 너무 많다.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어쨌든 그렇다면 예수님의 인맥은 어떠한가?

예수님 주위에는 항상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 세리, 창녀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했었다.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친구요,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였다.

당시의 실세였던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외면당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이단자라 하여 적으로 간주 되었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왕으로 칭송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더욱 참담한 것은 3년이나 함께한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이 붙잡히신 날에 한 명도 남지 않고 다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나는 예수라는 사람을 모른다며 부인하고 맹세한다.

아니 예수님을 팔아넘긴 자가 바로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했던 그의 제자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이다.

그의 곁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예수님이 어떠한 명예를 가지고 계신 것도 아니다.

지금 예수님은 죄인으로 가장 처참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에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사람을 바로 죽이지 않고 조금씩 피가 빠지게 하여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것이 십자가형이다.

어떤 이는 너무 고통스러워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깐 지금 예수님의 상황은 가장 처참한 십자가형을 당할 정도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악당이고 죄인인 사형수이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제쳐두고 인간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한다면 그것 또한 대단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어떠한가?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로 사형을 당한다.

남들이 살아갈 인생의 절반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정이라도 제대로 꾸렸는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았으니 자식도 없다.

형제들도 그를 미쳤다고 비난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은 보기 드물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실패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죽음의 순간에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는 실패자인데, 어느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데, 그런 그가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전부를, 모두를, 몽땅 이루었다는 것이다.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 최면인가?

지금 곧 죽는데 자기만족을 위한 최면이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일까?

예수님의 어떤 마음이 이렇게 당신의 삶을 다 이루었다고 공언할 수 있게 했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그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게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예수님의 삶에는 인간의 기준에서 말하는 성공이 존재치 않았다.

그러한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돈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칭송받기 위해서, 오래 살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른, 확실하고 뚜렷한 삶의 목적이 있었다.

 

마태복음 1722절 하반절, 23절 상반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마태복음 262절 말씀이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 우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자신의 제자에 의해 팔릴 것도, 또 다른 제자가 3번이나 부인할 것도, 고난을 받을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바로 죽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었다.

창세 때부터 준비된 그 수치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었다.

예수님의 죽기까지 그냥 내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했던 제자들.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 했던 유대인들.

그들의 허망한 다짐이나 기대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은 그것을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고 계신 것이다.

자신이 인간으로 오신 이유, 삶의 목적,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

이것을 예수님은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이루심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여러 이적을 보이셨지만, 완전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보통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자고, 슬퍼하기도, 기뻐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를 내시기도 하셨다.

배고픔과 피곤함도 인간과 동일하게 느끼셨다.

인간의 연약함을 고스란히 가지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그 삶의 목적을 이룸에 있어서 많은 유혹을 받으셨던 것이다.

성경에는 40일 금식 후에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자신을 경배하면 세상을 다 주겠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것을 이기신다.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예수님은 겸손함으로 그 유혹을 뿌리치신다.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죽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며 이겨 내신다.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시험을 당하신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향한 가장 무겁고, 힘든 시험, 그것은 두려움이다.

 

마태복음 263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신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지금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두려움을 여러분은 이해하실 수 있는가?

여러분은, 나는, 우리는 결단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 괴로움을 알 수 없다.

어떤 책에서 이 예수님의 두려움을 이렇게 표현한 것을 읽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느끼신 두려움은 당신이 경험한 가장 무서웠던 순간, 그 순간이 매일 매일 반복되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주님의 두려움.

단순히 육체의 두려움만이 아닌,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영적 두려움을 동반한 엄청난 무게의 시험.

예수님은 이 힘겹도록 무거운 두려움을 기도로써 극복하셨다.

땀방울이 핏방울과 같이 뜨거워질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며 승리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이나 가치보다 월등히 앞선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에 삶의 목적을 두셨다.

거기에 소망을 두고 꿈을 두고 살아가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받으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서 지금 십자가에 달리셨다.

 

정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외경과 위경, 그리고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예수님을 향한 또 하나의 유혹이 있다.

혹시 1988년에 만들어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영화를 아는가?

이 영화에서는 천사를 가장한 사탄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내려와도 된다고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게 내려오게 된다.

 

이 영화와 같이 실제로 예수님이 그러한 유혹을 받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처럼 십자가에서 내려오셨을까?

 

누가복음 2334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하시더라.”

 

실제로 영화와 같은 유혹이 예수님께 임했을지라도 예수님은 분명히 그것을 뿌리치셨을 것이다.

그 어떤 유혹도 예수님의 정한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음을 확신한다.

예수님을 향한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이 아님을 예수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다.

모든 유혹을 이기시고 마지막에 자신 속에 있던 인간적인 두려움을 극복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어진 주권마저 포기하시고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의 목적대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은 실패자인가?

예수님은 최고의 승리자이다.

인간의 기준, 세상의 잣대로는 철저한 실패자일지 모르나, 그보다 훨씬 우월한 하나님의 기준에서 완벽한 성공자이며 승리자이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부활하심으로 증명하시고 확정하셨다.

 

우리는 삶의 목적과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절대 선상에서 예수님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여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향한, 푯대를 향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향한 소망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돈을 많이 버는 것, 힘 있는 사람을 많이 아는 것, 누가 보더라도 부러워하는 배우자를 얻는 것, 이런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것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 기준에서의 성공 요건들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에 제약이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과감하게 배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승리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주님의 이 위대한 약속을 기억하여야 한다.

 

오늘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삶의 목적을 바로 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내 삶을 거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예수님의 다 이루심, 승리하심을 기억하고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둘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한마음 신앙공동체 모두가 주님의 부활처럼 나의 부활을 꿈꾸며 천국을 목적으로, 천국을 향해 오늘도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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