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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7 절기

[어린이주일] 작은 예배자.(마가복음 10:13-16)

by TwoTalents 2023. 5. 7.

제목 : 작은 예배자.

 

본문 : 마가복음 10:13~16

13.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말씀 :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작년에도 어린이 주일에 오늘의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본문의 내용과 똑같은 말씀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있다.

그래서 본문을 바꾸어 볼까 하다가, 두 본문에 큰 차이가 없어서 그대로 마가복음의 말씀을 선택했다.

같은 본문으로 작년에 몇 가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어딘가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엄마, 아빠밖에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에 있어서 가장 크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이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교회 선생님, 일가친척, 연예인 아이돌…….

우리 아이들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영향력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잘되고 못되고는 90% 이상, 엄마와 아빠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 탓할 것 없다.

부모 탓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삶의 주관자이시다.

아이들의 목자시고 인도자이시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나님께 좋은 영향력을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느냐는 부모들의 초창기 역할이 좌우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향한 예배의 자리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나누었다.

아이들을 예배의 자리로, 예수님 앞으로 이끌어 올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사람은 부모님인 것이다.

 

현재 부모인 분들도 있고, 앞으로 부모가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리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주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작은 예배자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작은 예배자이다.

성경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수님 시절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는 계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병이어에 나오는 5천 명도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실제는 더 많았다는 말이 된다.

적어도 만 명을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그 당시의 문화였다.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을 만큼 여자와 어린아이는 지극히 작은 존재였다.

아주 미약하고 하찮은 존재였다.

특히 아이들은 더 그러했다.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문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

작년에 나누기를 이 사람들은 당연히 부모일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하다못해 할아버지나 할머니, 적어도 삼촌이나 이모, 고모는 될 것이다.

자신의 자식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누구보다도 내 자녀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거나, 그 소문을 들은 부모 내지는 부모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온 것이다.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래서이다.

그런데 이것은 부모의 마음일 뿐이다.

다른 어른들은 생각이 다르다.

다른 어른들에게 있어서 아이들은 어떠한 존재인가?

방해 거리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이나 회당에서 혹은 기타 여러 곳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셨다.

그런데 그 진지한 자리에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방해 거리만 될 뿐이다.

특히 제자들에게는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준엄하고 위엄 있는 예수님의 말씀 도중에 혹시나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고 예수님 말씀 소리보다 더 큰소리로 악을 쓴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어오겠는가?

제자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부단히도 신경 썼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제자들은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도록 제지한다.

그냥 제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을 꾸짖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오는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제자들의 반응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자리에서 아이들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다.

꼭 중요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식당이나 병원, 극장, 지하철 등등 공공장소에서 개념 없는 한 명의 아이가 수많은 어른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개념 없는 아이 뒤에는 더 개념 없는 부모가 버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몇 세 이하는 출입을 금합니다.’ 하면서 아예 기준을 두는 모임이나 장소도 많이 보인다.

어쨌든 예수님 당시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린아이는 계수에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아주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보다 규모 잡힌 모임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다른 곳에 가서 노는 것이 더 마땅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보신 예수님의 반응은 제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아이들이 오는 것을 제지하는 제자들에게 노를 발하신다.

본문 14절 상반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지금 뭐하는 거냐?’

놔둬라.’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본문에 등장하는 금하지 말라라는 말을 헬라어 성경에는 메 콜뤼에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현재 명령어이다.

지금 당장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에는 방해하지 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아이들이 오는 것을 제지함을 지금 당장 그만두라는 말씀이다.

아이들이 오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뭘까?

예수님이 아이들을 좋아하셔서 그러셨을 수도 있다.

독신이셨으니깐 아이들의 정신없음을 제자들보다 모를 테니 아이들에게 더 너그러울 수 있다.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부모들의 믿음을 귀하게 여겨서 그러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저는 이 상황을 예배의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 그 자리의 중심에서 예수님이 천국의 말씀을 전하시고 있다.

이 자리를 무슨 자리라고 할 수 있을까?

저는 이 자리를 예배의 자리라고 본다.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지고 천국이 선포되어지는 곳.

이 자리는 당연히 예배의 자리이다.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체험하기 위해 나아오는 것이다.

그것을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이들을 못 오게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이들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을 용납하신 것이다.

아니 계수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하찮게 여김을 받은 어린아이들을, 예배자로 부르시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예수님께서는 어른들이 업신여기는 어린아이를 예배자로 부르셨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을 용납하셨다.

그럼 마땅히 어린 아이들도 예배의 자리에 나와야 하고,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부모님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내 아이가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을 기꺼이 용납하고 도우시길 바란다.

또한 내 아이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우시길 바란다.

어린아이를, 우리의 자녀를 예배자로 부르셨다.

그렇다면 그 어린아이도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른들의 예배에 방해 거리가 아니라, 어른들과 동등한 예배자가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주일 아침에 나오기 전에 아이들의 머리에 안수하며 이렇게 기도하기를 바란다.

 

하나님! 오늘 OOO와 OOO, OOO가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예배의 방해자가 아니라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지금은 너무 어려서 찬양도 모르고, 말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배의 참석하여 예배가 우리 아이들의 삶이 되게 하소서. 말씀 중간에 울지 않게 하소서. 찬양 중간에 소리 지르지 않게 하소서.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주께서 우리 아이들을 잠자게 하소서.”

 

이런 기도가 지금 당장 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은 철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면 반드시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될 것이다.

조금씩 주께서 찾으시는 예배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기도는 응답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예배자로 부르시고, 예배의 자리에 용납하셨다는 사실의 의미를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예배자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지혜로운 부모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어린아이들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을 용납하신 예수님께서 변함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하신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런 자,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15절을 통해 천국을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신다.

본문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이 말씀을 말하면서 대부분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의 의미를 아이들의 인성에 두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 천진난만함이 있어야만 천국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순수함이 하나님의 나라를 아무런 의심도 없이 믿고, 바라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큰 오류가 있다.

그 오류는 아이들은 모두가 순수하고, 착하다고 일반화를 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아이들이 모두 순수하고 착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못됐는가?

되바라지고 어른 알기를 지나가는 강아지처럼 생각한다.

지가 잘못했으면서도 학교 선생님이 야단치면 동영상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애들이 요즘 애들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천진난만하고 순수하지 않다.

하늘에서 천사가 발을 헛디뎌 땅에 떨어졌는데, 그때 그 천사가 아기가 되었다?

웃기는 소리이다.

굳이 천사와 악마 중에 아이들이 어느 쪽에 가깝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악마에 가깝다고 말할 것이다.

혹시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애가 있다면 그 애는 왕따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벌써 순수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천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아이들이 계수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만큼 하찮은 존재였고, 유대 사회에서 제일 약자라고 봐도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어린아이들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하찮게 여기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지금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너희가 지금 이 어린아이들을 하찮게 여기느냐?’

가장 낮은 존재로 생각하느냐?’

천국이 이렇게 하찮고 낮은 자의 것이다.’

누구든지 이렇게 낮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낮아져야 하고 하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겸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천국은 겸손한 자의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시대에 가장 소외되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그런 존재와 같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오늘은 한 본문을 통해 두 가지 말씀을 나누었다.

첫 번째는 아이들도 예배자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배자로 부르셨다.

어린이들도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먼저 믿은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도와야 하며, 특별히 부모들이 그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여기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업신여길 만큼 하찮은 존재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이들은 예배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겸손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겸손한 예배자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나에게,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 사람이교회의 예배가 예배의 환경과는 상관없이 아기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주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와 함께 예배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낮아짐으로 겸손하게 나아가는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것으로 주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매일 매일 넘칠 수 있기를...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언제나 고백 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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