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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2 누가복음 묵상(I)

하나님의 기쁨이다.(누가복음 15:1-10)

by TwoTalents 2023. 2. 2.

이미지 출처 - 심천 사랑의 교회

제목 : 하나님의 기쁨이다.

 

본문 : 누가복음 15:1~10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묵상 :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세리와 같이 사람들이 죄인이라 생각하며 가까이하기를 꺼렸던 사람들도 많았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홀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 불만이 많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이 부분에 관해서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다.

본문 1, 2.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상식으로는 정결하지 못한 죄인들과 가까이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민족의 배신자라고 여기는 세리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그와 똑같은 인간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거리낌 없이 죄인들과 마시고, 세리들과 함께 먹는 것이다.

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서는 상당히 불편한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두 가지 비유로 말씀을 전하신다.

먼저 잃어버린 양의 비유이다.

본문 3~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양을 잃어버렸던 목자의 슬픔과 간절함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양을 다시 찾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목자의 기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잃었던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은 양을 어깨에 들쳐메고 집으로 돌아올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멈추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을 불러놓고는 잔치를 벌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벗들과 이웃들을 불러놓고 잔치를 벌일 정도면, 적어도 양 한 마리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재정을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목자에게는 양을 다시 찾은 것의 기쁨이 그 정도로 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다시 찾은 드라크마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본문 8~9.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한 여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 드라크마 중의 하나를 잃어버렸다.

한 드라크마는 화폐단위로는 한 데나리온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에 해당하였다.

그러니깐 요즘으로 치면 7~10만 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본문의 여인은 하루 치 일당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잃은 한 드라크마를 위해 온 집에 등불을 켜놓고 구석구석 살폈던 것이다.

그리고는 결국 잃었던 한 드라크마를 찾게 된다.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이 이후에 어떻게 하는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은 벗과 이웃을 불러놓고 자신의 기쁨을 함께 즐기게 된다.

그렇다면 이 여인도 정작 찾은 한 드라크마보다 더 많은 지출을 감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잃은 양의 비유와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는 둘 다 그것을 찾은 목자와 여인의 기쁨으로 끝을 맺는다.

저는 이 두 비유의 핵심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백 마리 중에 겨우 한 마리, 열 드라크마 중에 겨우 한 드라크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내버려 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으러 위험한 숲으로 갔던 목자를 무책임하고 무모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기껏 한 드라크마를 찾아 놓고선 그것이 기쁘다고 벗과 이웃을 불러서 그만큼의 재정, 아니면 더 큰 재정을 들여 그들과 즐기는 여인을 어리석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제적 계산으로는 분명히 이득이 될 것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목자가 기뻤다는 것이다.

여인이 너무나도 기뻤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목자와 여인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이웃과 친구를 초대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남들의 눈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양 한 마리, 한 드라크마가 대수냐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잃은 양을 찾은 목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이 당사자들이 너무나도 기뻤다는 것이다.

양 한 마리의 가치보다, 한 드라크마의 가치보다 더 큰 재정을 들여서라도 이웃과 기쁨을 나눌 정도로 잃은 것을 찾은 기쁨은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찾는 것이 맞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잃은 한 영혼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이런 기쁨이라고 말씀하신다.

본문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지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죄인이라고 업신여기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들이라는 것이다.

남이 아니다.

원래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영혼인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찾게 된다면 그 기쁨이야말로,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기쁨과 어떻게 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무슨 딴지를 건다고 할지라도, 돌아온 자녀를 보시며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신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진실인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잃었던 자녀를 찾으시는 일.

떠나버렸던 자녀들이 돌아오는 일.

어떤 수고를 통해서라도 한 영혼이 구원받는 일.

큰 손해를 보더라도 한 생명이 살아나는 일.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품을 수 있는 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마치 세상의 일처럼, 하나님의 일에 이해타산을 따지며 할 일과 안 할 일을 구분하지 않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라면, 그 일이 주님을 즐겁게 하는 일이라면.

수고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행할 수 있는 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예수님께서 그런 수고와 손해로 우리를 살리셨다.

그 기막힌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고 손해 보는 나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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