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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구약)/01 창세기 묵상(I)

결국, 돈 때문이다.(창세기 25:19-34)

by TwoTalents 2023. 1. 26.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제목 : 결국, 돈 때문이다.

 

본문 : 창세기 25:19~34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묵상 :

아브라함이 죽고, 그에게 주어졌던 약속, 즉 땅과 자손에 관한 약속이 이제 이삭에게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삭은 40살이 되어서 간신히 리브가와 결혼하게 된다.

거기다가 이삭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리브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결혼하고 20년이 지나도록 자녀를 갖지 못했다.

아브라함 때도 그러시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삭 때도 이렇게 애를 태우신다.

결국, 이삭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것을 맡기게 될 때, 철저하게 낮아져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비로써 대를 이은 약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본문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그런데 이번에는 한꺼번에 두 명의 아이가 잉태된다.

아브라함처럼 중간에 딴짓하지 않아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갑절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이 아이들이 엄마의 태 속에서부터 다투고 있다.

본문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지금처럼 초음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배 속에 있는 아이들이 다투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이것은 리브가가 힘들고 괴로워서 하나님께 간구할 정도로 아이들의 움직임이 격렬했음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어쨌든 리브가가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하나님은 이 아이들의 미래를 말씀해 주셨다.

먼저 이 아이들은, 형제이고, 거기다가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민족이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둘은 갈라서게 되고 각각의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다투게 될 것인데, 그 다툼으로 인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나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결국은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섬기게 되리라는 것이다.

한 아버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그것도 쌍둥이인데, 마치 다른 민족, 적군, 원수와 같은 관계가 되어버릴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성경에는 유난히 형제의 다툼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이 잉태하여 태어난 첫 아이와 둘째 아이,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형제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가인의 일방적인 질투이긴 하지만, 어쨌든 폭력과 살인으로 형제의 관계가 끝나고 만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비록 배다른 형제이지만, 그들에게는 아브라함이라는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결코 함께할 수 없는 형제가 되어버렸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에서와 야곱은 다투고 반목하는 형제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실제로 야곱의 후손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민족이 에서의 후손인 에돔 민족이었다.

야곱의 12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형들이 질투하였다.

그 질투가 동생을 노예상에게 팔아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게 한다.

그 외에도 성경에는 형제들이 서도 다투고, 원수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누구보다 친밀해야 하고, 서로를 도와주고, 대적 앞에서 함께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형제의 다툼은 장자권과 관련이 있다.

당시의 문화에서 볼 때,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꼭 장자의 권리를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비가 장자의 축복을 하고 인정해야 그는 장자가 되는 것이다.

맏아들은 자신의 장자권을 지키기 위해, 동생들은 장자권을 획득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던 것이다.

누군가 아버지에게 차별적 사랑을 받게 되면, 여지없이 질투하고 그를 대적하게 된다.

 

그렇다면 장자권이 무엇이기에 그것 때문에 형제가 반목하는 것인가?

장자권은 아비의 뒤를 이어 그 집안의 가장이 되는 권리이다.

좀 더 공격적으로 말하면, 그 집안의 모든 것에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의 결정권이 장자권이 있는 이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동생들은 집을 떠나서 살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장자권을 가진 이에게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 배의 유산을 아버지로부터 받을 권리를 갖게 된다.

그러니깐 아버지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들을 가장 많이 물려받고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장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자권 때문에 벌어지는 형제들의 다툼은 결국 돈 때문이고, 권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안의 주인 자리를 놓고 형제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이삭은 순종과 일편단심의 아이콘이고.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인데.

그들의 자녀들은 자기가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으려고, 집안의 주인이 되려고 서로 물고 물리는 다툼을 벌였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신앙 교육을 오늘날의 신앙 교육과 절대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다.

문화도 다르고,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도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믿음의 가정의 자녀들이 이방 민족의 자녀들과 다를 것이 없음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재물에 욕심부리는 믿음의 자녀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고난을 주시고, 고통을 겪게 하신다.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남매간의 전쟁이 일어났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다툼이 있기 얼마 전까지 가족 경영의 문제로 전 국민에게 지탄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서로 편이 되어 방어해주던 모습을 보였는데.

경영권 앞에서는 그런 모습이 온데간데없다.

회사가 누구의 것이 되느냐에서는 누나도, 동생도, 엄마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승리해서 회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재물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혈연관계이다.

물론, 그들의 재산이라는 것이 우리 같은 사람은 인식하기도 힘들 정도의 규모이기에 거기에 형제니 자매니를 어떻게 결부해야 하는지도 감도 오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다른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형제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가?

물질 따위 때문에 나의 형을, 나의 동생을 배신하지 않는가?

....................

 

어려서부터 집이 부자가 아니라서 불편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불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부분은 나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없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다.

적어도 유산 때문에 형제들끼리 다툴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런 마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레위기 25: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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