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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구약)/01 창세기 묵상(I)

슬픈 가족 이야기.(창세기 21:1-21)

by TwoTalents 2023. 1. 13.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슬픈 가족 이야기.

 

본문 : 창세기 21:1~21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묵상 :

본문에서는 약속의 자녀 이삭의 탄생과 함께 아브라함의 슬픈 가족 이야기가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이삭이 25년 만에 탄생하는 것으로,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는 행복만 가득해야 할 것인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사라가 자신의 아들인 이삭과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 사이에서 붉어진 문제로 인해 남편 아브라함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본문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본문에서는 하갈의 아들이라고 표현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고 밝힌다.

이 당시 이스마엘은 15~17세 정도이며, 이삭은 생후 2년 정도로 보고 있다.

10대 중반의 청소년이 두 돌이 지난 아기를 상대로 어떤 놀림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삭의 엄마인 사라가 보기에 너무나도 불편했고 이스마엘과 그의 어미 하갈을 쫓아내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불만을 듣고 매우 근심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났어도 여전히 이스마엘을 사랑하고 있다.

약속의 자녀가 태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조강지처 사라의 부탁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이스마엘과 하갈을 쫓아내는 것을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분노는 물론 아브라함의 근심까지 모두 수용하시는 말씀을 해 주신다.

본문 12,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먼저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신다.

이 답변에는 사라의 요구도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삭의 씨를 보호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배려가 함께 나타난다.

그러면서 이스마엘의 아브라함의 아들임을 인정하시며 그가 한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이것은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에게서 쫓겨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함께 하실 것을 밝히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은 참으로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강점은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말씀을 믿고 바로바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근심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아브라함의 행동이 나타난다.

이스마엘과 하갈을 쫓아내면서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만을 하갈에게 주는 것이다.

하갈은 여종이었다가 첩이 된 사람인데, 이제는 아들과 함께 쫓겨나 과부가 될 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불쌍한 위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와 아들에게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밖에 주지 않고 쫓아내 버린다.

이건 이스마엘과 하갈에게 죽으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왜 이랬을까?

 

(이번 묵상에서는 지난번과 다르게 아브라함을 변호하고 싶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믿었고 그 말씀을 빨리 실행하시길 바랬을 것이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이스마엘과 하갈은 방황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지금 이스마엘과 하갈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많은 물을 준비하여 광야서 오래 버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스마엘과 하갈이 살길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이스마엘에 관한 약속을 믿고, 지체하지 마시고 어서 그 두 모녀를 보살피시길 기대했을지 모른다.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는 오래가지 않아 동이 나게 될 것이 뻔하고 그때,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을 인도하실 수밖에 없음을 기대했을 것이다.

 

실제로 물이 다 떨어졌을 때, 하갈은 울면서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절망의 순간,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나타나셨다.

본문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하갈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말씀 후에는 모자를 샘물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살리신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스마엘과 함께하시며 그를 장성하게 하신다.

본문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중재될 수 없고, 함께할 수도 없는 이삭과 이스마엘, 사라와 하갈이다.

그들 사이에 끼어 아버지이며 남편인 아브라함은 근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향한 믿음을 요구하셨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근심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그것으로 이삭은 보호받고 이스마엘을 장성하게 된다.

 

사실, 사라는 참으로 황망할 것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아닌가?

하지만 기쁨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아들이 놀림거리가 되는 것을 확인하며 분노해야만 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선택이 불가한 문제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아들을 버리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하갈은 가만히 있다가 불똥이 튀었다.

자신의 아들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첫째 부인이 노발대발하면서 자신과 아들을 쫓아내려 하는 것이다.

 

살다가 보면, 이렇게 황망한 일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자주 있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닥쳐오고, 불행의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그냥 감수해야 하는 슬픔이 너무 많다.

눈에 뻔히 보이는 불이익을 알면서도 당해야 할 때도 있다.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오롯이 견디고 이겨내야만 하는 일들.

이러한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다.

근심하는 나를, 흔들리는 나를, 슬퍼하는 나를, 넘어진 나를.

일으키고, 위로하고, 잡아주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자.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말씀하신 주님께서 깨닫게 하실 것이다.

나의 눈을 바뀌시고, 나의 생각을 바꾸시고, 나의 마음을 바꾸실 것이다.

그렇게 나를 회복시킬 것이다.

 

말씀을 듣자, 그 말씀에 순종하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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