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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신약)/42 누가복음 묵상(I)

인정할 줄 아는 것.(누가복음 11:14-26)

by TwoTalents 2023. 1. 11.

 

이미지 출처 - Godpeople

 

제목 : 인정할 줄 아는 것.

 

본문 : 누가복음 11:14~26

14.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묵상 :

오늘은 예수님께서 말을 못 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을 행하시는 부분이다.

이때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는 것을 눈으로 직접보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능력의 출처를 의심한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능력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능력이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귀신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표적을 구한다.

예수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것이 맞다는 표적을 자신들에게 보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은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의심하기 위한 의심이다.

지금 귀신을 쫓아낸 것 자체가 표적이다.

사탄의 세력을 쫓아낸 것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표적이다.

그런데 이 표적을 보고도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애초에 의심을 위한, 반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표적이 주어진다고 해서 그들이 인정하게 될 것이 아니다.

 

이렇게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논리적으로 반박하신다.

표적을 보여줘도 인정하지 않으니깐 논리적으로 반박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로 반박하시다.

첫 번째로는 만약 같은 편끼리 싸우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 집안이 바로 서겠냐는 것이다.

사탄이 사탄과 싸우고, 귀신이 귀신과 싸우면 그 세력이 온전하겠느냐는 말씀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너무나 우습다.

니편 내편이 없어 보인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보수가 보수를 공경하고, 진보가 진보를 공격한다.

이것은 개인의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은 그렇게까지 어리석지 않다.

자기들끼리 싸울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씀과 함께 또 하나 더 말씀하시는 것은 당시의 구마의식에 대해 말씀하신다.

구마 의식은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을 말한다.

예수님만 귀신을 쫓아냈던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쫓아내신 귀신이 강력한 귀신이었고, 거기다가 한 번의 실패도 없이 귀신을 쫓아내셨기에 예수님이 대단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도 구마 의식을 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능력을 받아 구마 의식을 했었다.

바리새인을 비롯한 여러 종교인들이 귀신을 쫓는 의식을 진행했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질문하시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예수님께서 귀신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라면.

바리새인이나 종교 지도자들 중에 귀신을 쫓아냈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냈는지를 반문하시는 것이다.

똑같이 귀신을 쫓아냈는데, 예수님은 바알세블의 힘을 빌려 쫓아내셨다면 그들도 마찬가지인 것 아닌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 맞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깐 주님의 능력이 진짜이기 때문에 선포한 메시지가 진짜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이제 주님과 사탄의 영적 전쟁을 묘사해 주신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영적 전쟁에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예수님 편에 서거나 사탄의 편에 서는 것이다.

언젠가 말씀 중에 교회를 예로 들어 나눈 적이 있었다.

교회 문 앞에서 한발은 교회에 들이고 한발은 교회 밖에 두었다면 그것은 교회에 들어온 것인가 나간 것인가?

이때 내렸던 결론은 나간 것이라는 것이었다.

두 발이 온전히 교회 안에 있어야 들어온 것이다.

한 발짝은 세상에, 한 발짝은 예수님께.

이건 세상으로 나간 것이다.

믿음에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영적 전쟁에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편에 서든가, 아니면 다른 편인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귀신에게 놓임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신다.

치유된 이후에 주님과 함께하지 않고, 바로 서지 못한다면 더 강력한 귀신에 의해서 더 심하게 붙잡히게 될 것을 경고하신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이전보다 사탄이 들어가기에 더 좋은 상태에 놓이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치유 받은 후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믿음이 없다 보니깐.

능력을 체험하고도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깐.

더 상태가 안 좋은 것이다.

아예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하나의 희망이라도 있다.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체험을 하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희망마저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 입장에서는 더 좋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능력을 체험해도 예수님께 돌아갈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 이름으로 쫓겨날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에게는 마음 편안하고 안락한 최고의 거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귀신에 들렸던 그 사람에게는 이전보다 훨씬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 번째로 반대를 위한 반대, 의심을 위한 의심은 그 어떤 유익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검증을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본문은 검증을 위한 의심이 아니다.

아니 표적이 나타나서 검증되었는데도 반대를 하고 있다.

능력으로 표적을 보였더니 능력의 출처를 따져 묻고 있다.

천사를 쫓아낸 것도 아니고, 귀신을 쫓아냈는데 거기에 능력의 출처를 밝히라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어떤 능력을 보이고, 어떤 표적을 보이더라도 그저 의심하고 반대할 뿐이다.

두 번째는 온전히 주님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믿고 의지할 수는 없다.

두 발 모두 들어선 것이 아니라면, 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제는 그 말씀 붙잡고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으로 구별되는, 거룩한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지만 예전보다 더 심한 상태가 되지 않고, 자유함으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보이신 많은 표적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심이 필요할 때가 있고, 확인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의심을 위한 의심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확인할 수 있는 선까지 확인하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인정하고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온전히 주님의 편에 서야 한다.

비록 지금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나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주님 가신 그 길을 묵묵히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에게 진중함으로 인내하는 믿음을 허락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완전하심을 인정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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