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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60 베드로, 고난을 논하다-베드로전서(I)

고난을 기대하며, 그 고난을 즐거워하는 삶.(베드로전서 4:12~19)

by TwoTalents 2024. 1. 20.

 

제목 : 고난을 기대하며, 그 고난을 즐거워하는 삶.

 

본문 : 베드로전서 4:12~19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말씀 :

믿는 자들은 자신의 믿음으로 인한 여러 가지 기대가 있을 것이다.

여러 그리스도인들과 믿음 생활에 관해 나누다 보면 많은 이들이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면, 이 땅에서 큰 고통 받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믿음 생활 잘하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 보다도 자기가 더 성공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 땅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잘 살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대가 지나쳐서 기대를 넘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이 세상에서의 평안한 삶, 이 땅에서의 성공을 위한 것인 경우가 아주 많다.

하지만 기대와 목적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만약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그것이 믿음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너무나도 잘못된 목적이다.

이 부분은 너무나도 많이 나누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의 영화로움을 기대하는 것, 성공을 기대하며 사는 삶은 괜찮은 것인가?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나누었으면 한다.

 

만약 베드로전서가 기록될 당시의 성도들이 이런 기대로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졌다면 어떠했을까?

그런 기대는 전혀 쓸데없는 기대일 것이다.

당시에는 예수를 향한 믿음 때문에 오히려 더 큰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만 했던 시대였다.

예수님도 이미 믿는 자들의 고난을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고난받으시고 모함을 받아 죽게 되실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하신 박해가 제자들에게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도 주어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자신의 편지를 통해 계속해서 고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으로부터 고난이 있을 것이고,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고난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임을 전하고 있다.

본문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는 교회를 향해, 믿는 자를 향해 가해지는 불의 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불의 시험은 불같은 시련’, ‘불같은 고난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는 이런 시련과 고난을 오히려 믿는 자들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난은 결코 믿는 자들의 슬픔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이 닥칠 때, 오히려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한다.

믿는 자들이 믿음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나는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그날, 나는 주와 함께 그 승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 때문에 지금 고난받는 것을 즐거워하라고,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고난이 닥칠 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고난받을 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본문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 당하는 것을 복이라고까지 말한다.

?

그 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 속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그 순간,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다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겨내야 한다.

아니 이겨낼 수 있다.

성령과 함께하심으로 분명히 이겨낼 수 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이라도 그것이 자기 죄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일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한 벌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운 모습이다.

베드로는 이 부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

본문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자기 잘못, 자기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면 아무런 유익도 없고, 성도에게 기쁨일 수도 없다.

하나님께 영광도 아니고 단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베드로는 이에 대해 앞에서도 계속 강조하였다.

믿음의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일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이라면, 진실한 믿음을 위한 고통이라면 이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본문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어떤 상황에서건 고난과 고통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고난받고, 고통당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으로 고난받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 나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핍박은 그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이며, 성도에게는 축복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 심판의 때를 상기시킨다.

본문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구원과 심판은 반대의 개념이 아니다.

심판은 법적인 절차이고, 구원은 그 절차의 결과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구원과 심판에 시간적 갭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불신을 근거로 심판이라는 법적 행위로 인해 믿는 자에게 구원이라는 결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본문의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깐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 심판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의 고난을 이기고, 나의 믿음을 지켜낸다면.

그렇게 나를 지키고 성결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면.

우리에게 심판은 구원의 확정을 위한 과정이 된다.

하지만 불신자에게 심판은 그렇지 않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들에게 심판은 오직 멸망과 죽음이라는 결과만 가져다줄 뿐이다.

어쨌든 그 결과가 구원이든, 죽음이든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베드로는 믿는 자들의 구원이 결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본문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불의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한다.

구원은 과정이고 여정이다.

나를 유혹하는 세상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지금 아무리 불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막상 주님 앞에 서는 날.

그날에 나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내 구원의 여정은 잘못된 길을 걸었던 것이 된다.

의인의 구원도 이런데, 경건치 않은 자들의 구원은 어떻겠는가?

당연히 그들의 삶, 주님을 불신했던 삶에 합당한 심판을 받고 멸망 당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나를 지켜야 한다.

본문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베드로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것을 가르친다.

고난 속에서도 선을 행함에 노력해야 함을 전한다.

고통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내 영혼을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베드로가 살았던 1세기의 세상은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였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믿음 때문에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많이 있었다.

그런 성도들을 향한 베드로는 고난 속에서 오히려 기뻐할 것을 전한다.

예수님께서도 그 고난을 다 아시고, 이미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난 중에 혼자 두지 않고 보내신 성령으로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고난 중에도 끝까지 자신의 믿음 지킨 이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영광과 축복을 상기시킨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이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믿음 속에서 딜레마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내 이웃을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상하게 나에게는 이런저런 고난이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 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자꾸 실패하고, 여전히 슬픈 일이 생기게 된다.

말씀의 서두에 나누었듯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이 땅에서 평안하게, 남들보다 풍요롭게 살아가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삶이 기대처럼 되지는 않는 것이 진실이다.

 

이런 것에 대해 목회자에게 질문하면 대부분 이런 대답을 한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잘 믿으라고.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드러내지 못한 죄를 가슴 깊이 숨기고 있을 것이라고.

이것이 맞는 말일까?

여러분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은 마치 욥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어리석은 욥의 친구들과도 똑같은 모습일 뿐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목회자들 역시 잘못된 기대를 가졌고, 그 기대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예수 믿고 이 땅에서 복 받고, 이 땅에서 잘되는 교회, 이 땅에서 잘되는 성도라는 이상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지나쳐 그것이 목적이 되고, 그런 세속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믿음의 척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잘못된 가르침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이 땅에서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잘못 가르치는 바람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고 맞지 않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복을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이 땅에서 잘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 임하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믿고 알기 때문에.

이 땅에서 고난이 와도, 어려움이 닥쳐도, 천국을 생각하며 그것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베드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이 세상에서 믿는 자로서 온전한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고난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믿음 때문에 핍박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즐거워해야 한다.

내가 세상과는 다른 목적과 가치관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고난을 이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에 대한 영광은 주님 오시는 그날 주께서 우리를 높이시며 나타내실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서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땅에서의 영화로움을 기대하는 것, 성공을 기대하며 사는 삶은 괜찮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러니깐 이 땅에서의 성공을 목적으로는 두지 않고, 잘살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 정도는 어떻느냐는 것이다.

어떨 것 같은가?

너무나도 위험하다.

기대하는 것 정도가 큰 문제인가?’라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너무 과신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기 내면 깊이 숨겨둔 욕망, 욕심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기대하면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믿는 자라도 세상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원하심이 아니다.

주님은 성도의 고난을 말씀하셨다.

그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대하셨다.

믿는 우리의 기대는 주님과 같아야 함을 고백한다.

믿는 우리는 내가 믿음 때문에 고난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 고난을 주께서 약속하신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과 함께 멋있게 이겨낼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렇게 기대해야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고, 고난이 와도 즐거운 것이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기대하고 있는데 고난 중에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가?

세상의 즐거움을 기대하는데 고난받음이 어떻게 즐거움이 될 수 있겠는가?

 

오직 믿음으로 인한 고난을 기대하며 그 고난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함으로 기뻐하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나를 기대하며, 주께서 약속하신 영광의 영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애초에 다른 기대, 다른 기쁨, 다른 즐거움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 구별된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이 땅에서부터 내 마음에 참된 천국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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