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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35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하박국의 찬양.(하박국 3:1~19)

by TwoTalents 2020. 5. 31.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하박국의 찬양.

 

본문 : 하박국 3:1~19

1.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2.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 옵소서

3.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4.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5.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6.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7.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

8.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9.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 나이다

10.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11.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12.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13.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14.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 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15.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16.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 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말씀 :

하박국 3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하박국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로 말씀에 반응한다.

 

3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본문 2~15절은 여호와께서 이전에 행하신 일에 대한 하박국의 반응이다.

반면 본문 16~19절은 앞으로 행하실 일에 대한 하박국의 반응이다.

 

하박국의 기도는 표제를 기록하고 있다.

본문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오놋식가욘의 복수형이다.

식가욘은 시편 7편의 표제에 나오는 말로 애통의 노래혹은 회개의 시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쨌든 하박국 3장은 기도이지만, 시편과 같은 노래임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 본문의 마지막 절인 19절 하반절에는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라고 기록되어 이 시가 노래임을 확인시켜 준다.

 

하박국은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 노래의 시작한다.

본문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주께 대한 소문은 과거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때 일을 기억하면서 오늘날에도 그 일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개역 개정 성경은 그것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번역하였다.

하지만 본문의 부흥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부흥회 때 말하는 부흥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한국 교회에서 말하는 부흥은 그저 양적인 부흥을 말하는 것이다.

교인 수의 증가, 재정의 증가, 예배당 건축 등 눈에 보이고 수치화될 수 있는 것들의 증가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부흥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던 과거의 삶이 오늘날 다시 살아질 수 있게 해 달라는 선지자의 간곡한 간구이다.

그러면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길 기도한다.

만약 인간의 죄악 그대로 심판하게 되면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함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과거의 놀라움을 노래한 하박국은 이제 역사 속에서 현현하셨던 하나님을 서술한다.

본문 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데만과 바란 산은 이스라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이다.

남쪽에서부터 일어나신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이 온 하늘을 덮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한 주인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이어서 본문 4.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온 땅을 비추는 햇빛 속에 하나님의 권능이 감추어져 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권능이 모든 곳에 닿아있다는 것이다.

곧 모든 것의 주관자가 되신다.

본문 5.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당시에는 역병과 불덩이를 신이 내린 재앙이거나 징계로 생각하였다.

모든 재앙과 징계의 주관자 역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본문 6.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 그 무엇도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영원하고 무궁할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손길 한 번에 엎드러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이어서 이스라엘과 열방 사이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난다.

본문 7.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

 

본문의 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다스렸던 메소포타미아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구산은 이스라엘을 정복해서 다스렸던 왕이고,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민족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대적하셨고 물리치셨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산은 사사 옷니엘 때, 미디안은 사사 기드온 때 패망을 한다.

 

하박국은 계속해서 노래한다.

본문 8.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역시 이 부분도 배경이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던 어느 사건을 나타내는 것만은 확실하다.

강들을 노여워하시고, 바다를 향하여 성내신다는 표현 때문에 홍해와 요단강을 건넜던 사건을 나타내고 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본문 9절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본문 9.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역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라는 표현 때문에 홍해나 요단강 사건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혹은 천지창조 당시 에덴에서부터 갈라졌던 네 물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것 역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역사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활동에 피조물들이 반응하게 된다.

본문 10.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전쟁사가 기술된다.

본문 11.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이 부분은 여호수아 시대 때, 여호수아의 기도로 태양이 멈추었던 기브온과의 전투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움직여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셨다.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열한다.

본문 12, 13.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셀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적한 나라에 대해서 여지없이 승리를 이루어 내셨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이스라엘의 왕들을 위해 싸우시고 적들을 물리쳐 주셨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의인을 위해 싸우셨음을 드러낸다.

본문 14, 15.

 

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그들은 악인이며, ‘가난한 자는 의인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커다란 물결같이 가난한 자, 바로 의인을 집어삼키려고 달려드는 악인들을 대적하여 싸우시고 승리하신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하박국은 과거에서부터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고, 시시때때로 악인들을 물리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선지자는 여전히 불안하다.

본문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은 익히 듣고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암담하기 때문이다.

이 암담한 현실 속에서 하박국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고통과 불안함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선지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다.

 

선지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본문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곡식의 소출을 비유로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총체적 난국인 것이다.

무화과나무도, 포도나무도, 감람나무도, 나무란 나무는 줴다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나무뿐만 아니라, 밭에도 거둬들일 소출이 전혀 없다.

우리와 외양간도 텅텅 비어있다.

양과 소, 가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문제이고, 모든 것이 어려움이고, 모든 것이 난감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런 총체적 난국에서도 선지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아니 해야 하는 일을 찾게 된다.

본문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개역 개정은 나는이라고 되어있지만, 히브리 성경에는 봐아니’, 그러나 나는이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각종 영어 번역본에는 ‘Yet I’라고 번역하고 있다.

암담한 현실이지만, 그러나 나는 기뻐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아니 기뻐해야 함을 고백한다.

왜 기뻐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구원이시기 때문이다.

이 암담한 현실에서 구원하실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니 현실은 이렇더라도 결국 내 영혼을 살리실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

하박국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이 되시어 선지자가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뛸 수 있게 하실 것을 고백한다.

 

불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되었던 하박국서는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는 기뻐하며, 찬양하고 확신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현실은 여전히 참혹하다.

암담하다.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성령이 선지자를 만지셨다.

그가 하나님께서 이루셨던 과거의 역사를 듣게 하셨다.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기억하게 하셨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에게 믿음이 있음을 알게 하셨다.

그 믿음으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직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었다.

그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주 여호와는 힘이 되어 주셨고, 그의 발이 사슴처럼 띄게 하셨다.

결국,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지켰던 여호와를 향한 기쁨이 그를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왜 저 사람의 말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려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구원을 알고 있고, 그 구원으로 인해 나의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한데.

왜 저 사람의 하찮은 공격으로 인해 내 기쁨이 멈춰야 하는가?

내가 왜 현실의 가난 때문에 슬퍼해야 하는가?

내가 끝까지 주님 앞에서 겸손함과 신실함을 지킬 때, 나를 위해 준비하신 놀라운 천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님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왜 하찮은 물질 때문에 슬퍼해야 하는가?

내가 왜 세상의 성공을 부러워해야 하는가?

이 세상이 끝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이룬 성공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하늘나라에서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데.

내가 왜 세상 가치를 좇은 어쭙잖은 성공 앞에 실패자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렇게 영적으로 저급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지 않는가?

적어도 나는 주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람인데 말이다.

 

현실이 암담하더라도,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더라도.

그러나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놀라운 고백, 이 아름다운 찬양이 한마음 신앙공동체 모두의 입술에서 고백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바로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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