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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35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나의 질문에 대하여.(하박국 1:12~2:1)

by TwoTalents 2020. 5. 29.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나의 질문에 대하여...

 

본문 : 하박국 1:12~2:1

1:12.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 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 셨나이다

1:13.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도 잠잠하시나이까

1:14.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1:15.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16.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1:17.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2:1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 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말씀 :

어제 나누었던 하박국 11~11까지는 하박국의 호소와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박국은 악인이 일어나 의인을 에워싸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하며 질문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 악인들을 당신께서 세우셨음을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응답을 들은 하박국은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호소하게 된다.

본문 12.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벨론을 일으키신 이는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경계하기 위하여 바벨론을 일으키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고통은 당하여도 죽지는 않을 것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도구로 이스라엘에게 바라시는 것은 깨달음이고 바로 서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악인들이 계속해서 창궐하는 것에 대해서 하박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13절 상반절.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주님의 눈은 정결하시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것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

패역을 보면서 참고 견디지 못하신다.

그런데 현실은 악인들이 창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박국은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 13절 하반절.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본문의 방관은 히브리어로 나바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뜻은 열심히 바라보다’, ‘골똘히 바라보다이다.

거짓된 자들이 거짓말하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데 하나님께서 그냥 바라만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제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잠잠하시나이까는 히브리어로 하라쉬벙어리가 되시나이까로 해석된다.

그러니깐 악인들이 의인들을 삼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암묵적인 용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박국은 이 부분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범죄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세우신 도구가 바벨론이냐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자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민족이다.

범죄자를 징벌하기 위해 더 악한 자를 세우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불의를 징벌하기 위해 더 큰 불의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하박국은 바벨론에 의해 유린당하는 이스라엘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본문 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강력한 바벨론 앞에서 이스라엘은 마치 물고기나 벌레와 같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의 처지는 다스리는 존재가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치 물고기나 벌레처럼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계속해서 하박국은 바벨론 군대의 거침없는 정복을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 올리는 어부에 비유하여 표현한다.

본문 15.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바벨론의 주신은 마르둑이다.

바벨론의 창조신화를 에누마 엘리쉬라고 부른다.

거기에 보면 마르둑이 바다의 신인 티아맛을 잡기 위해 그물을 사용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이런 신화를 비추어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략을 종교적 문제로 부각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16.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바벨론이 마르둑을 섬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하박국은 여호와에게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론은 마르둑의 힘을 빌려 풍요와 번영을 구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대답을 구한다.

본문 17.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바벨론이.

마르둑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이.

이렇게 패역한 바벨론이 계속해서 심판의 도구가 되어서 나라들을 멸망시키며 승승장구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하박국은 현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다 하더라도 어떻게 더 나쁜 놈을 통해서 징계하신단 말인가?

그것도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족속을 세워서 말이다.

자칫 하나님의 자녀가 우상의 자식들에게 패배하는 모양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나님보다 마르둑이 더 강한 신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박국은 이런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격앙된 어조로 하나님께 질문하던 하박국은 갑자기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2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는 표현은 전쟁에서 사용된 말이다.

적들의 동향을 파수꾼이 성루에 서서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 적의 침략에 대해 대비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하박국은 이렇게 전쟁에서 적군의 동향을 살피는 파수꾼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겠다고 고백한다.

말씀의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다 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오는 고백이다.

하박국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질문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합당한 응답을 해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한가지 생각해 보자.

하박국은 11절에서부터 계속해서 흥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실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당돌하면서도 도전적인 질문을 하나님께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하박국은 하나님을 상대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서 불평하며 따지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옳은지, 자신이 옳은지 토론을 하는 것인가?

하박국은 불평하며 따지는 것도,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것도, 하나님과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것도 아니다.

하박국은 지금 질문하고 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때문에 답답함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질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놓칠세라 전쟁터의 파수꾼처럼 집중하고 주목해서 주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왜 이러는 것인가?

마치 불평과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늘어놓더니 왜 갑자기 하나님께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것인가?

결국, 답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범죄한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징계하시려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 민족을 세우신 것은 더 이해되지 않는다.

단순한 징계의 도구를 넘어 바벨론은 다른 여러 나라들까지 정복하며 승승장구한다.

하박국은 화가 날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악을 싫어하시고 패역을 참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상황에서도 잠잠하시는지, 마치 보지 못하는 것처럼 가만히 계시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모든 것의 대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모든 것의 대답이 하나님께 있는 것인가?

이스라엘을 징계하겠다고 작정하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바벨론을 세우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비록 더 나쁜 악인이지만, 일시적으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묵인하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당연히 해결도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고, 해답도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질문하는 것이 최고의 정답인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 많은 일들 중에 나의 상식으로 이해되는 일이 많은가? 그렇지 못한 일이 많은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과의 많은 부딪힘이 생기게 된다.

그때,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많은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일이 많은가?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적인 일이든 합리적인 일이 많은가? 불합리한 일이 많은가?

나의 삶의 모습, 나의 경험에 따라 이에 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잊지 말고 마음 중심에 새겨야 할 진리가 있다.

결국,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조주시다.

인간을 만드셨고, 사회를 구성하셨다.

모든 일과 모든 것의 주관자이시다.

온 세상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보다 더 정확하게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답이시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왜 나쁜 사람들이 계속해서 잘사는지?

왜 믿음을 지키며 열심히 살려는 나에게 시련이 끊이지 않는지?

왜 하나님을 믿는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에게 조롱을 당해야 하는지?

 

그런 다음 하박국의 마음으로.

주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파수꾼의 심정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 그러한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정답이신 주님의 응답을 받으며, 다시 부르시는 주님께 대답할 수 있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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