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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하나님은 있다.(시편 14편)

by TwoTalents 2020. 5. 14.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검색

제목 : 하나님은 있다.

 

본문 : 시편 14편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말씀 :

시편 14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른 노래.

지혜시로 분류한다.

 

다윗은 이 시를 통해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고발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어리석음과 타락한 상태를 지적한다.

시편 14편의 주제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멸망과 이 땅 위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대이다.

 

먼저 다윗은 어리석은 자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담대하게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면 인간 존재의 가치도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에게 도덕, 질서, 의지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만약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면 그 모든 것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을 본능에 따라 사는 동물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어리석은 자들은 부패하며 행동이 가증스럽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욕을 따라 살아가고 도덕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부정한 삶을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의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 될 뿐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의 부패와 가증스러운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고의로 양심의 소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 있으면 안 된다.

?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자신들은 진실로 어리석은 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신약시대에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살려두면 자기들이 죄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예수님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구세주를 부정하듯이, 어리석은 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선을 행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인격에서는 선한 행위가 나올 수가 없다.

이것은 인간의 기준에서의 선이 아니다.

하나님 기준에서의 선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단코 하나님 없이 선을 행할 수 없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인생을 굽어 살펴보신다고 고백한다.

본문 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영적인 지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 지를 찾아보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타락하고 부패한 삶을 살고 있었다.

본문 3절의 치우쳤다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사르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제 고집대로 하다’, ‘완고하고 반항적이다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제 고집대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다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며 함께 악을 행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말은 세상에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사상은 바울이 선보인 신약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과 흥정을 했던 마지막 의인의 수는 10인이었다.

그 큰 성, 소돔 고모라에서 의인 10인을 찾지 못하여 그곳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과연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몇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윗과 같이 인간의 부패와 죄에 대하여 철저한 자기 발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을 때, 우리는 구원의 가치를 가볍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 중에는 선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인간 모두가 하나님 없이는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윗은 계속해서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이야기한다.

본문 4~6.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한 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의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악인들은 가난하고 의로운 자들을 괴롭히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마치 습관처럼 떡을 먹듯이 자연스럽게 의인을 괴롭히고 있었다.

여기에서 무지하다라는 말과 떡을 먹는다라는 말은 둘 다 완료형이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행위가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악인들이 날마다 죄를 지으며 오직 자기 힘과 지혜를 믿으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시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의인의 편에 서실 것이다.

그렇기에 악인들은 그들이 행한 죄악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떨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악인들은 항상 자신들의 박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가난한 자들은 계획을 멸시하고 무산시켜 버렸다.

본문에서 계획은 악인들의 핍박에서 벗어나려는 의인 계획을 말한다.

그리고 부끄럽게 한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보쉬라는 말로 창피를 준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박살 낸다’, ‘분쇄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깐 가난한 자의 자유를 위한 계획을 박살 내고 분쇄해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불법의 상황에서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을 선포한다.

다윗은 주께서 가난한 자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을 고백한다.

또한, 여호와께서 마침내 악인들은 심판하고 가난한 자들을 그들의 손에서 구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선포한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종국에는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선포한다.

본문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은 누구인가?

다윗은 과연 누가 시온에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주실 것이냐고 묻는다.

시온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이며, 성막이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는 그곳이 여호와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다윗은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께서 포로가 된 자기 백성을 돌려보내실 때가 올 것이라고 선언한다.

본문의 포로된 것이란 바벨론 포로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인들에게 억압당하는 상태를 상징하는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윗은 이러한 억압의 상태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주실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원이 성취되는 날에 그 백성은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정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시온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때를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으로 시편을 마무리 한다.

 

말씀 마무리.

구름이 짙게 하늘을 가린 날에는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태양이 그곳에 없는 것은 아니다.

태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말 그대로 단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평생을 하늘에 먹구름이 낀 날처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한다.

그런 부인함은 그들의 영의 눈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이 끝인 양, 이생이 마지막인 양 자신들의 욕구대로, 마음대로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으로 인하여 후회하며,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은 여전히 저 구름 뒤에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시기 때문이다.

많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셨다.

자연이, 양심이, 성경이,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주님의 증거를 알고, 믿고, 체험한 우리들, 먼저 믿은 자들의 증거와 믿음의 행위만 있을 뿐이다.

원래 어리석었던 나를 위해 오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저기 구름 뒤에 태양이 있다고, 저 하늘 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주님의 말씀을 들고, 믿음으로, 행동으로, 사랑으로 증거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서산 땅을 맡기셨다.

이 땅을 위해, 이 땅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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