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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19 호흡이 있는 자마다(시편)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시편 15편)

by TwoTalents 2020. 5. 15.

이미지 출처 - CALLIGRAPHY & DESIGN : 동일기획

제목 :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본문 : 시편 15편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말씀 :

시편 15편은 다윗의 시이다.

그런데 시편 15편은 다윗의 시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시의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없다.

영국의 침례교 목사인 스펄전 목사는 시편 15편에는 시편 24편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편 15편이 시편 24편과 함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던 것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어쨌든 시편 15편은 시편 중에서도 아주 짧은 시편에 속한다.

하지만 비록 짧은 시편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실질적인 교훈은 적지 않다.

시편 15편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됐는가에 따라 우리가 받게 될 교훈은 다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스펄전 목사는 언약궤, 즉 법궤와 관련되어 그것을 들어 옮기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펄전 목사와 같은 영국의 설교자인 로이드 존스 목사는 시편 15편에 대해서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때에 부르는 노래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니깐 꼭 법전을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로이드 존스 목사의 생각을 지지한다.

 

그렇게 되면 시편 15편은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기에, 예배하기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실제 삶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좀 더 확장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깐 시편 15편이 꼭 한정된 공간에서의 예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즉 삶의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는 예배에 대해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 드리는 예배, 우리가 보통 말하는 예배도 예배이지만,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생활, 우리 삶의 전반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5편을 특별히 정한 예배와 함께 우리 삶 전체를 예배로 보고 거기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먼저 다윗은 질문하면서 이 시편을 시작한다.

본문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본문에는 두 번의 질문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내용상으로 이 질문들은 하나의 질문이다.

주의 장막이나 성산이란 말은 의미상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는 시온의 장막이나 시온의 언덕을 의미하는 말로서 공식적인 제사와 경배가 드려지는 장소를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깐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할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 예배의 처소를 밟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대답이 2절 이하부터 연속적으로 열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열거된 대답들이 상당히 실질적이라는 것이다.

영적 부분이 짧게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말하고 있다.

본문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행위를 언급하고 있다.

정직하게 행하며이다.

여기서 정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타밈이란 단어이다.

이 단어는 완전함을 나타낸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간이 도달해야 할 도덕적 수준을 의미하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공의를 실천하며 역시 행위적인 말이다.

공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체데크라는 단어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올바르고 공정해야 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면서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라고 표현하면서, 내면의 생각마저도 진실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예배자들은, 그리고 그 일상의 삶이 예배인 사람들은 그 마음의 생각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을 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계속해서 3절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여기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웃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 혀로 남의 허물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본 구절은 그 혀로 다니지 아니하며이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중상 모략하며 이리저리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결코 남의 허물을 드러내놓고 돌아다니면서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행위에 있어서도 이웃에게 악을 행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레아라는 말이다.

이 말은 가까운 사이는 물론 우연히 만난 사이의 친구, 동료를 모두 의미한다.

어떤 때는 아예 다른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모든 사람에게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한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라고 되어있다.

역시 이웃은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비방하지 아니하며NIV 영어 성경에는 ‘casts no slur on’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누명을 씌우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니깐 이것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본문 4절에서 신앙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이 설명되고 있다.

예배하는 자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한다.

본문의 망령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니메아스거절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형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멸시하며라는 표현은 무시한다라는 뜻을 지닌다.

악한 자들의 소행을 전혀 본받지 않고 멸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깐 본문 4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자의 행위를 본받지 않고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예배하는 자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높이는 사람을 존경하고 높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예배하는 자는 서원한 것이 해로울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면 그 약속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혼자 바보 같을지라도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인 것이다.

 

마지막 5절에서 다윗은 예배하는 자들의 경제관을 설명한다.

본문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구약 시대에 완전하게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에게는 이자를 받는 것은 허용되었었다.

하지만 가난한 형제나 동족에게 이자를 취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모세의 율법은 가난한 형제나 동족에게 이자를 받는 것을 착취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의 갑질은 똑같았던 것 같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율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였다.

바벨론에서는 빌린 돈의 33.3%가 이자로 요구되었다고 한다.

앗수르에서는 심지어 50%까지 요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있었기에 안식년이나 희년 제도가 생겼다.

그러니깐 5절 말씀은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이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에 대해 높은 이자를 징수하며 갑질을 하는 행위에 관한 것으로 봐야 한다.

구약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대한민국은 착취와 강탈이 범람하는 도둑의 소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대부업체의 최고 금리가 24%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법적으로 막고 있지만, 한 때, 35%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옛날 구약에서나 있을 법한 정신 나간 짓을 오늘날의 대부업체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인간들은 도둑이고 강도이다.

 

그리고 다윗은 예배하는 자는 뇌물을 받고 무죄한 죄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구약 시대에는 뇌물을 받는 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뇌물에 의해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결국 그 사회가 병들어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이다.

한때 강대국이었던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지도자들의 부정과 부패가 관련되어 있다.

그들이 뇌물을 받고, 그 뇌물로 무죄한 자와 유죄한 자를 잘못 구분함으로써 그 사회는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나라 자체가 멸망해서 없어지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신에 위정자들의 부정과 부패는 그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국민들에게 희망이 아닌 절망을 주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 버린다.

 

적어도 예배하는 자들은 뇌물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야만 한다.

이렇게 돈에 대하여 착취와 부정이 아닌 나눔과 사랑으로 행하는 자는 영원히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고 다윗은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

 

말씀 마무리.

우리는 시편 15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장막에 머무르는 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가져야 할 모습을 살펴보았다.

각각의 항목을 나눈다면 11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열 한 가지 조건은 단순히 예배에 참석하는 등의 의식적인 행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것은 삶 전체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매일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매일 매일의 삶이 바로 예배의 삶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영원히 요동치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시편 15편은 1절에서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와 주의 성산에 사는 자가 누구인지를 질문하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2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이 주어졌다.

그러니깐 이것은 결국 시편 15편의 2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처럼 영원히 요동치 아니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참 예배자들이고, 그 참 예배자들이 바로 주님과 함께 주의 장막에 머물고, 주의 성산에 사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 속에서 어떤 모습인가?

삶의 예배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참된 예배자인가?

우리는 참된 예배자로 영원히 요동치 않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 예배의 모습은 주의 장막에 머물고, 주의 성산에 사는 자의 모습인가?

 

오늘 우리는 참된 예배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 나누었다.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는 한마음 신앙공동체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우리 한마음 신앙공동체의 예배가, 삶의 모습이 주의 장막에서, 주의 성산에서 주님과 머물고 함께 살기에 부족함 없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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