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제 일어나...
본문 : 시편 12편
1.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5.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7.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8.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말씀 :
시편 12편은 표제에서 밝힌 대로 다윗의 시이다.
대체로 사울 통치의 말기를 이 시의 배경으로 보고 있다.
사울 통치 말기 이스라엘의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시점에서 기록된 시인 것이다.
다윗은 시대의 타락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탄식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특별히 시편 12편은 사람의 말, 즉 인간의 언어가 타락한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언어는 인간사회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언어, 말이다.
동물들도 같은 종끼리 어느 정도 소통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와 비교할 수가 없다.
인간은 언어로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문화와 문명이 말에 의해 창조되었고, 전달되고, 발전되어 왔다.
인간 존재의 이유와 목적 역시 바로 이 말로써 표현되어 졌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언어)은 존재의 집이다.’ 라고까지 말을 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말이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말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인데, 다윗이 시편 12편을 기록할 당시에는 말이 너무나도 악하게, 그리고 개념 없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시편 12편은 이러한 시대를 슬퍼하는 애가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속이는 자, 거짓된 자들은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묵도하게 된다.
다윗은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문 1절.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여호와여 도우소서’라는 표현은 히브리 원문에서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나타내고 있다.
세상에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 자들이 없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급박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여호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왜 사라지는 것일까?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들이 악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이 점점 악해져서, 더 이상은 선한 이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타락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노아의 시대가 그러했고,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가 그러했다.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 시대 역시 이런 악한 시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타락상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본문 2절.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도다.”
모두가 거짓을 말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그저 사람의 귀에 듣기 좋으라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첨일 뿐이다.
아첨하는 자는 겉과 속이 다르다.
마음 깊숙한 곳의 진실을 숨긴 채,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한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너무나 흔한 모습이다.
언제부터인가 개인의 능력보다 관계가 중요시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니, 사람과의 관계가 이미 그 사람의 능력이 되어버렸다.
지금 말하는 관계는 사랑의 관계, 진실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힘 있는 자들에게 아부하고, 그들에게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 시인의 시대는 너무나 닮아있다.
이러한 시대에 다윗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한다.
본문 3절.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이것은 하나님께 진실하지 못하고 아첨하고 자랑하는 모든 입술을 끊어달라는 다윗의 간구이다.
다윗은 거짓으로 아첨하는 자들의 말이 얼마나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본문 4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악한 자들이 말로써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거짓과 속임수로 자신들이 목적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자신들의 입술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도 자신들을 주관하지 못할 것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이다.
이것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부인하며 멸시하는 행위이다.
이런 중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에게 임하게 된다.
본문 5절.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 시대는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 자들이 점점 사라지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눌리고 궁핍한 자들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남아있는 경건하고 충실한 자들을 나타낸다.
그들이 타락한 세상에서 경건함과 충실함을 지킴으로 악인들에게 눌리게 되고 궁핍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억울함을 탄식함으로 간구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답하시고 말씀하신다.
“내가 이제 일어나”, 이제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직접 역사 가운데 개입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악인들을 두고 보시는 방관자가 아니시다.
그들을 참고 기다리시며 인내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으신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긍휼함으로 참으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전과는 다르게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악인에 대한 심판을 지체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벌하시고 가련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구체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겠다는 것이다.
가련하고 궁핍한 자를 악인의 횡포로부터 구원하셔서 주께서 예비하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임을 선포하고 계신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의 응답에 확신을 가지며, 하나님의 말씀은 악인들의 말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고백한다.
본문 6절.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악인들의 말은 아첨이고 거짓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함이다.
거짓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신뢰할 수 있는 말씀이다.
7이란 숫자는 이스라엘에서 완전 수이다.
그러니깐 ‘일곱 번’ 단련되었다는 표현은 거룩함과 완전성을 상징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며 완전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찌꺼기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은과 같은 것,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순수한 은과 같다는 것이다.
악인들의 말에 있는 찌꺼기들, 바로 거짓과 아첨, 교만과 조롱, 비난과 시기, 무지와 악독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것들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아니 신뢰해야만 하는 말씀인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7절.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다윗의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부터 나온 것이다.
다윗은 앞으로 곧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 중에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이 세대’는 다윗 시대의 악한 세대를 가리킨다.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 말은 이제까지 출현했던, 그리고 지금 출연하고 있고, 앞으로 출현하게 될 모든 악한 세대까지도 다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영원히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가련해지고, 놀림을 당하고, 궁핍에 처하게 되는 자들의 탄식을 들으실 것이다.
계속해서 나타날 악한 세대로부터 반드시 그들을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을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7절에 이어 덧붙여서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8절.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 도다.”
‘비열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줄루트’이다.
이 말은 ‘무가치함’ 또는, 경우에 따라 ‘탐욕스러움’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악인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악을 자행함을 나타낸다.
당시에는 이런 자들이 사회에서 높임을 받는 불의한 사회였다.
악한 자가 곳곳에서 득세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악한 사회였던 것이다.
칼뱅은 이 부분을 악인들이 사회의 구석구석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시대라고 표현했다.
오늘날과 비슷하다.
아니, 2020년의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2편의 다윗의 기도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함을 고백한다.
앞서 말한 대로 8절은 독립절이 아니라 7절에 덧붙여진 종속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8절을 결론 부분으로 봐서는 안 된다.
‘날뛰는 도다’로 끝맺을 것이 아니라, ‘날뛴다고 할지라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그러니깐 7절과 8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뛴다고 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까지 보존하시리라’라는 말씀이다.
말씀을 마무리….
계속 언급했지만, 다윗이 시편 12편으로 하나님께 고백했던 그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너무나 닮아 있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악한 말과 아첨의 말, 거짓의 말, 두 마음의 말이 가득한 세상, 말 때문에 악으로 득세하는 세상이다.
직접적으로 악한 말들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 댓글과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글들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카페, 클럽…….
지구에 생존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제가 아닌 상상의 공간에서 가면을 쓴 채 거짓된 자아의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실제의 자신과 허상의 자신을 헷갈리기도 한다.
그로 인한 범죄도 매년 늘어가고 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악한 말에 대한 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제는 정답처럼 되어버렸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도 그들처럼 적당히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이런 세상 가운데서도, 일곱 번 단련된 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집중해야 함을 고백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찌꺼기가 많기 때문에, 순수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믿는 자들은 우리의 입술을 지켜 주님의 입술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주의 말씀을 지키려다가 겪게 될 우리의 눌림.
세상과 다르게 살려다가 찾아올 우리의 탄식을 주께서 반드시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주님이 일어나실 때가 머지않았다.
주께서 반드시 일어나 하나님의 안전지대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키사 이 악한 세대로부터 영원히 우리를 보전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확신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편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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