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
본문 :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말씀 :
시편 11편은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추격하던 때, 다윗이 핍박받으면서 지은 시로 추정된다.
본문은 다윗과 그의 친구들이 주고받는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다.
악인들의 횡포가 극심한 상황인데, 공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지 아닌지는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친구들은 그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도피하기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위기에서 인간의 잔꾀로 넘기려 하지 않는다.
그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자세로 위기를 극복하기 원하고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앞서 말 한대로 본 시편은 다윗의 시로, 친구들 간의 대화형식으로 시작하고 있다.
본문 1절.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다윗을 향하여 친구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한 것이다.
본문에서 ‘산’은 위기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찾게 되는 ‘피난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의 친구들은 다윗이 실질적인 피난처,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장소로 도망가기를 권고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친구들의 권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방법을 찾아 지금의 위기에서, 지금의 고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다윗이 처한 상황을 다윗 스스로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본문 2절.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악인이 이미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인 상태라는 것이다.
이제 활시위를 놓기만 하면 다윗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절대절명의 위기이며 절박한 상황이다.
서슬 퍼렇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턱밑까지 쫓아 온 상황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친구들은 실질적인 도피처를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위기 상황에서 실제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을 권면하고 있는 친구들의 조언을 반박하고 있다.
본문 1절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다윗은 ‘나는 하나님께 피하였는데 너희들이 그렇게 말함은 어찌함인가?’라고 친구들의 권면을 일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이렇게 친구들의 조언을 뒤로한 채 오직 하나님께만 피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 안전한 피난처는 없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다른 여러 시편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피난처 되심을 고백한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강한 요새시요, 견고한 산성이며, 피할 바위가 되시고, 구원의 뿔이시며,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그러한 하나님을 체험해 왔던 것이다.
다윗의 특별한 체험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철저하게 확신하고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러한 다윗의 태도를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윗을 아끼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누구보다 다윗을 염려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다윗이 어리석게 보였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너무나도 불확실한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세상적 방법은 이스라엘에게 확실한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본문 4~6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결국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굳은 확신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다윗은 인생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를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윗은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다윗의 신앙은 수 없는 도전과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이 땅의 성도가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임을 고백한다.
문제와 고난을 피하고자 타협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오히려 믿음으로 맞부딪혀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분명히 현실 속에서는 악은 득세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신다고 스스로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그 모든 것을 간과하지 않으실 것을 믿고 의지하여야 한다.
의인이 고통을 받고, 악인들이 형통하게 보이는 현실을 만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불의함을 간과하고 계신다고 생각할수 있다.
그래서 낙담하거나 신앙적인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가 반문하며 원망할 수도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은 자신들의 형통으로 인해 더욱 교만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런 힘이 없다며 여호와를 조롱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침묵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수록 의인이든 악인이든 그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의인’은 어려움과 고난의 시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참믿음이 드러날 것이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악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난 의인의 믿음은 그를 참되고 영원한 복을 얻게 할 것이다.
하지만 악을 드러낸 악인에게는 오직 심판이 기다릴 뿐이다.
드러난 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핑계 대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신다고 해서 내가 죄를 지어도 무방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악인을 향한 경고이며 죄의 길에서 돌이킬수 있는 기회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어 의지하여야 한다.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7절.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다윗은 위기와 환난 앞에서 낙담하거나 실망하여 결코 의로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였다.
다윗은 위기 너머에 있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의 참된 피난처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그늘을 벗어나서는 참된 안식이란 있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바로 기억하고 하나님 곁에서 언제나 노력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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