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치는 자의 소리/48 위선적 행위를 비판하며(갈라디아서)

유턴 금지.(갈라디아서 4:8~11)

by TwoTalents 2020. 7. 6.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유턴 금지.

 

본문 : 갈라디아서 4:8~11

10.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말씀 :

바울은 계속해서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율법과 믿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율법과 믿음 중에서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오늘 본문은 율법과 믿음 중에서 믿음을 선택한 이들이 그 선택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게 된다.

 

바울은 다시 한번 갈라디아 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를 확인시킨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어느 날 들이닥친 유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믿음이 아닌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본문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주님을 알지 못했던 시절, 즉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없던 시절의 상태를 환기시킨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상숭배를 말하는 것이다.

우상이라는 것이 실제 다른 신일 수도 있고, 아니면 돈이나, 권력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나의 삶을 맡겼다면,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신을 찾게 된다.

신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의지할 것을 찾고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다르다는 것을 전한다.

본문 9절 상반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의 복음 전파로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말이 하나님께서 갈라디아 성도들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본문의 알다라는 말은 헬라어 그노스덴테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그냥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이 아니다.

보다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의 앎을 나타낸다.

,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믿음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랑, 그가 주신 자유를 온전히 경험으로, 체험으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을 이렇게 경험한 이들이 율법주의자들의 헛된 가르침 때문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말았다.

과감하게 불법 유턴을 하는 것이다.

본문 9절 하반절.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라디아 성도들은 성령으로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알게 되었다.

이제는 영적으로 성숙하고, 자라나야 한다.

보다 깊은 고등학문으로 들어서야 한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 초등학문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발전이 아니라 퇴보를 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이 돌아가려는 초등학문을 약하고, 천박하다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본문의 약하다는 헬라어로 아스데네라는 말로 무력하다’, ‘아무런 힘이 없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니깐 초등학문은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박하다프토카라는 헬라어로 절대적 궁핍’, ‘결핍 상태’, ‘풍성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인간을 풍성하게 하지 못하고, 언제나 부족하며, 채워주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 것.

 

철저하게 초등학문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초등학문은 결코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

초등학문은 결코 인간의 부족함, 결핍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초등학문이 무엇인가?

바로 율법주의, 형식주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이 헛발질하고 있는 그 율법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 임을 계속해서 알게 할 뿐이다.

율법은 인간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없고, 오히려 부족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율법의 한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갈라디아 성도들은 믿음을 버리고, 아무런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천박하기만 한 율법을 지키며, 거기에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이 율법 자체에 정신이 팔려서, 의미도 묵상하지 않은 채 그저 글자대로 지키기에 급급했었다.

그런데 율법과 상관없는 이방인인 갈라디아 성도들이 유대인들처럼 율법의 참된 의미도 모른 채 그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날에 대해서라는 말은 금식일, 안식일 등등을 말하는 것이다.

달에 대해서는 월삭 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달력을 사용하고, 헬레니즘 문화에 속한 갈라디아는 양력을 사용했다.

그런데 맞지도 않는 절기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나팔절, 부림절 등등, 남의 나라 역사에 관련된 것들을 자신들이 지켰다.

해에 대해서라는 것은 안식년, 희년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특성과 역사에 맞게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들이다.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가진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걸 왜 지키고 있는 것인가?

 

물론 이러한 것들을 굳이 지키고 싶다면, 지키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날과 달과 절기, 해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기억하고, 깨닫는다면 나름 바람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이런 것들을 꼭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반드시 해야만 구원을 받는가?

아니다.

십일조는 구원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와 날마다 인도하시는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다.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래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헛된 가르침인가,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본문 마지막 절인 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본문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위해 수고한 것이 무엇인가?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였다.

그 복음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모든 수고와 결과가 헛될까 두렵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들의 구원의 상태가…….

갈라디아 성도들이 구원받았다는 상태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그 형식을 지키는 것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된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판이라는 것이다.

율법 때문에 오히려 구원의 상태에서 빗겨나게 생겼다는 말이다.

 

바울은 이미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에 이른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다른 복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율법준수라는 조건이 들어간다면, 구원은 백퍼센트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율법주의자들이 말하는 율법준수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헛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따르는 것은 우상숭배와도 같은 것이라고 바울은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본문 8절에서 갈라디아 성도들이 예전에는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이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종노릇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갈라디아인들이 종노릇하는 대상은 바로 율법주의자들이 전하는 유대 율법이었다.

그 다른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율법에 대하여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했으니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긋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났으니,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율법주의가 이렇게도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형식주의, 율법주의에 갈라디아 교인들의 모습이,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형식과 관습으로 왜곡시키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한국에 있는 기독교의 여러 교단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많은 교회가 담임목회자 한 사람의 인간적인 의지에 의해서, 성경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교회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적인 경험으로 세워놓은 관습과 율법 때문에 본질도 아니고 복음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허락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구원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믿음으로 인해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자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왜 자꾸 불법 유턴을 해서 주님께서 경고하실 수밖에 없도록 하는가?

우리는 더 이상 주님이 아닌 그 어떤 것에도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

재물의 종노릇 할 필요가 없다.

해 봤자 재물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율법에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

율법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지 못한다.

부족한 나로인해 절망만을 줄 뿐이다.

인맥, 지연, 학연…….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관계에 종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많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구원을 위해, 천국을 위해 믿음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선택을 믿고, 확신하여 나아가야 한다.

결단코 뒤돌아서서는 안 된다.

? 예수님께서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고 선언하셨다.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의 놀라우신 말씀을 믿고, 허망하게 율법으로 돌아서는 일이 없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쓸데없는 불법 유턴으로 우리의 모든 노력 자체가 헛것이 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한마음 신앙 공동체에게 믿음 앞에서의 유턴이란 결단코 없기를,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향한 직진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