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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8 위선적 행위를 비판하며(갈라디아서)

믿음으로 아들이 되다.(갈라디아서 3:23~4:7)

by TwoTalents 2020.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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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으로 아들이 되다.

 

본문 : 갈라디아서 3:23~4:7

3: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4: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말씀 :

바울은 계속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가르쳤다.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하나님과 믿는 자들의 관계를 설명한다.

바울은 율법이 역할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제는 믿음의 때가 되었음을 전한다.

본문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바울은 인간이 분명히 율법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계시 될 믿음이 이르기 전까지만 해당된다.

율법은 단지 사람이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는 역할의 한계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시간적으로도 믿음의 때 전까지라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율법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본문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율법을 초등교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본문의 초등교사는 헬라어로 파이다고고스라는 단어로 어린아이를 교육했던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노예는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전담해서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그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

율법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율법은 단지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할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어 그를 신령과 진정으로 믿게 되고 고백하게 되면, 더 이상 율법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초등학문인 율법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본문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실천이 있어야 한다.

본문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례 역시 할례처럼 구원의 표식이거나, 구원을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 조건이 아니다.

본문의 세례는 주님을 향한 자기 고백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전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자기 고백과 함께 세례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깐 세례라는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기 위해 드려졌던 믿는 자의 고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고백과 함께 그리스도의 옷, 즉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주님을 위한 삶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세례를 통한 고백과 삶의 방식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와 합하게 되는 것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조건도 중요하지 않다.

본문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 형식주의가 왜 성행하고, 왜 문제였는가?

유대인들의 지나친 선민사상 때문이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민이 맞긴한데, 그것을 자기들도 오해했던 것이다.

율법을 받은 자기들만 구원받고, 자기들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유대인들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믿음을 고백하고, 그 믿음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자랑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바로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을 행하는 자라는 것이다.

본문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육체적으로 혈연관계에 있거나, 율법을 잘 지키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 그 믿음을 실천하는 자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증을 다시 한번 다른 말로 재차 확인한다.

본문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앞서서 바울은 율법이 초등교사와 같다고 말하였다.

믿음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인도함을 받는다.

그때까지는 유업을 받을 수 없고, 율법 아래에서 종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본문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본문의 후견인과 청지기는 두 단어이지만, 똑같이 율법을 나타내는 말이다.

율법 자체가 나쁜 것일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기 전까지는 율법이 반드시 초등교사의 역할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본문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예수님을 향한 믿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유대인은 율법 아래에서, 이방인은 우상 아래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본문 4, 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완전하신 사람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그 아들도 율법 아래에서 율법을 지키며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율법 안에서 완전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죄를 속량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셨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서 거룩한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

그것으로 인간은 죄에서 해방을 얻게 된 것이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였는데, 죄를 사함받아 오히려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이 놀라운 은혜를 믿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본문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영, 즉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바는 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영어로는 대디’, 우리나라 말로는 아빠라고 번역하면 무난하다.

굉장히 친근하고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다.

 

이제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종도, 원수도 아니다.

본문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되었다.

이제는 상속자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혈육이나 율법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상속자로 주님의 유업을 받을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나누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율법주의, 형식주의에 빠진 것에 대해 분노하여 이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율법 아래에서는 인간이 죄인임이 드러날 뿐이다.

그나마 그 역할도 믿음이 이르기 전까지가 전부이다.

완전하신 예수께서 율법 아래에서 죄인 된 모든 사람들을 속량하셨다.

이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죄 사함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못한다면, 그는 율법 아래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죄인으로 남을 뿐이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고, 형식에 맞게 살아도, 죄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주님의 대속하심을 믿고, 그 믿음을 진실함으로 고백하고, 내 삶 속에서 믿음의 향기를 드러낸다면, 그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믿음이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였고, 믿음이 하나님의 상속자로 유업을 받게 하였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믿음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딸로 인정받게 하는 것은 형식이나 제도가 아니다.

오직 믿음이다.

 

나는 유대주의자도 아니고, 유대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니깐, 율법주의, 형식주의는 나와 상관이 없다??

결코, 그렇지 않다.

세계적으로 한국 기독교만큼이나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데가 없다.

믿음과도 상관없고, 구원과도 상관없는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교회의 신앙처럼 되어버린 경우도 아주 많다.

일반 성도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배우니깐 그런 줄 알고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원래 믿음과 아무런 상관없는 형식이 어느새 교회의 제도가 되어서는 그것이 마치 믿음의 척도처럼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가 형식주의,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믿음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 공동체 여러분.

이 얘기는 갈라디아서 6장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주어질 가르침이다.

갈라디아서가 마무리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고 깨달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이길 기도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은 자로, 주님 주신 자유 안에서 마음껏 믿음을 펼치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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