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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자료

수요 예배의 의미.

by TwoTalents 2017. 4. 10.

현대인들에게 수요예배는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의 교회에서 일반화 된 수요예배는 주일예배와 달리 그 참석인원과 예배형식, 설교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수요예배는 흔히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 지난 주일예배 후 지나온 3일을 돌아보고 다음 주일예배까지 남은 3일을 신앙적으로 무장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수요예배를 삼일예배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런 ‘중간예배’의 성격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은 수요예배를 신앙적 성숙의 수단으로 삼을 뿐, 주일예배처럼 강제성을 띤 공예배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상 수요예배는 과거 부흥운동의 연장에서 금요기도회와 함께 생겨난 ‘기도회’의 일종이었다.

서울신학대학교 오성현 교수(기독교윤리)는 “수요예배가 신학적 전통을 가진 건 아니다. 마치 새벽기도회처럼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독특한 신앙생활의 한 예”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도회적 성격이 짙은 수요예배에는 일반적으로 주일예배 인원의 3분의1 정도가 참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참석자들의 연령대도 신앙생활을 오래했고, 교회에서 헌신도가 높은 장년층이 주를 이룬다.

설교는 주일예배의 그것이 전 성도를 아우르는 평이한 것이라면 수요예배에선 주로 신앙적 성숙도가 깊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강해식 설교가 행해진다.

최근에는 저녁 시간대에서 탈피, 직장에 다니지 않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오전에 수요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늘고 있다.

분당 한신교회 이윤재 목사는 “수요예배엔 주로 성경공부식 설교를 한다. 참석자들도 교회에 오래 다닌, 헌신도가 높은 분들”이라며 “수요예배는 말 그대로 한 주의 중간에 드리는 예배다. 이를 통해 성도들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다가올 주일을 준비한다. 주일예배만 드리는 선데이크리스천이 돼선 결코 안 된다. 신앙은 자주 교회에 나올수록 좋아진다”고 성도들이 수요예배에 적극 참석할 것을 당부했다.

 

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성령론)는 “수요예배는 성경과 신학적 바탕 위에서 생겨난 것이라기보다 기독교 문화와 관련된 것”이라며 “수요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것을 드리지 않으면 죄’라는 것보다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왔고 좋은 유산으로 한국교회에 정착된 것이기에, 한국교회 한 일원으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신앙적 유산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태도라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신대 오성현 교수는 “모이기에 힘쓰는 일은 얼마든지 권장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경건생활에 있어 최근 그 중심이 교회에서 개인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예전엔 성경묵상과 큐티 등을 교회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들이 개인의 일상적 영역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 시대가 변한만큼 수요예배에 대한 생각도 다소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수요예배의 유래에 대해

수요예배는 한국교회 초기에 한국에 복음을 위해 파송된 외국선교사들에 의해 실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그 시기와 장소 등에 대해서는 알려드리기 어렵지만 수요예배는 우리 한국교회에서 시작되었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처음 한국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복음이 우리들 선조들 가슴 속에 파고 들면서 은혜가 충만한 생활을 했으며 많은 교인들이 마치 초대교회처럼 매일 교회에 회집하여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임을 자발적으로 이뤄 왔습니다.

그런 중, 세계에서 유일하게 새벽기도회도 실시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점진적으로 전국교회에 펴져 보편화 되었고 주일을 지나고 다음 주일까지의 기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되어 주중에 모임을 가져 기도하는 집회를 가지는 교회가 생기면서부터 수요예배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엔 "수요기도회"로 모여 기도한 것이 근래에 "수요예배"로 모임의 명칭이 바뀌었는데 요즘은 보통 모두 "수요예배"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요예배는 교회의 공식예배는 아닙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있는 "예배모범"를 보면 주일예배를 교회의 유일한 예배로 언급하고 있을 뿐 수요예배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수요예배를 어떤 교회에서는 "삼일 밤 예배"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숫자에 의미를 둔 것이 아니라 주일이 지나고 삼일이 된 날 수를 계산한 것으로 주님의 부활이나 삼위일체와는 상관이 없는 표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일을 기다리는 기간이 너무 길어서 그 중간에 다시 한번 모여 기도하는 모임을 갖었다는 것은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갈급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도 이런 신앙적인 전통을 가진 한국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006년11월10일  민 병 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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