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분하는 기준.
본문 : 요한일서 3:1-10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말씀 :
지난 본문에서 요한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마지막 때가 되더라도 주님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담대함을 얻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담대함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할 것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전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한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비교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하면서 그들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제시한다.
오늘은 이 부분을 나누어 볼 것이다.
먼저 요한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
본문 1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어떠한 사랑’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일이다.
그 아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죄를 감당케 하시고 인간의 죄를 깨끗게 하신 일이다.
이 기막힌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것이다.
그 사랑을 알고 믿기 때문에 그 사랑을 누릴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부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을 알지 못할뿐더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는 우리를 어리석다고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걱정할 것도 없다.
진리는 반드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님 오시는 날까지 흔들림 없이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고 나를 지킨다면…
결국은 마지막 때 나타나실 주님을 통하여 모든 진리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참모습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닮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믿는 자의 소망이다.
요한은 이 소망을 품은 자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 3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마지막 때에 주님과 같은 모습의 자신을 소망하는 자라면, 당연히 주님께서 깨끗하신 것처럼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할 것이다.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나도 거룩하기를 바라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룩하지 못하고 죄를 짓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자이다.
본문 4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죄가 곧 불법이다.
본문의 불법은 헬라어로‘아노미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율법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대적하는 것이 바로 불법이요, 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법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일 수 없다.
왜냐하면 주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불법을,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다.
본문 5절.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죄를, 불법을,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오직 완전하게 정결하신 주님이시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결하신 주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는데, 여전히 죄의 매여 있다면 어떻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 즉 그 안에서 거하는 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 6절.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범죄를 한다는 것은 주님을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죄를 씻으신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으니깐 여전히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범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요한의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은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 요한이 같은 요한일서 1장 8~10절에서 말한 것과도 모순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1장 8~10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은 당시 거짓 교사들의 교훈을 반박하면서 사실상 믿는 자들도 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가현설주의자들로 대표되는 거짓 교사들은 죄를 저지르고도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하였다.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에 육체의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요한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범죄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자백하면, 그때 모든 죄를 깨끗게 하신다는 고백이다.
그렇다면 요한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 부분에 관해 크게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6절에서 말하는 죄는 습관적인 죄를 말한다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습관적인 죄는 변명의 여지 없이 고의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 습관적인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죄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1장 8~10절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결과론적으로 모든 죄가 도말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세 주장 모두 타당성도 있고 억지스러움도 있다.
저는 이런 주장들을 일정 부분 수렴하면서, 구원이 과정이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에서 6절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었고, 그 믿음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마지막 때까지 지킴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죄를 이겼지만, 아직은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주께서 다시 오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그날까지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여전히 죄와 싸워야 하고, 주께서 깨끗하게 하신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같은 죄를 습관처럼 반복하지 않고, 죄의 상태에서 그대로 있지 않으며, 날마다 성장하고 자라서 결국은 주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모습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방향이 죄가 아닌 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향성을 흔드는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본문 7, 8절.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도덕적 방종이나, 이 땅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가짜들이 있었다.
이런 주장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들음직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결코 진리가 아니다.
거짓말이다.
나를 죽이는 마귀의 속임수이다.
그렇기에 결코 그런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도 요한은 그런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임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였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인간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도록 하였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했을 때부터 나를 넘어트리려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마귀의 일을 막고, 그들을 멸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씨가 있음을 전한다.
본문 9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앞서 6절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때부터 자동적으로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본문 9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말도 믿는 자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하지만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특별히 9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씨는 주님의 말씀일 수도 있고, 주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하나님의 씨로 인하여 죄를 거부하는 삶을 살면서, 잘못하고 넘어지면 하나님께 자백하고 다시 일어나고…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씨가 내 안에 있기에 내가 죄의 상태로 계속 머무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아직은 불완전하여 죄를 범할 수도 있지만, 그 범죄를 거짓 교사들의 주장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뻔뻔하게 죄 없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이 부분에서 극명하게 나뉘게 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분별하는 분명한 기준점을 이렇게 제시한다.
본문 10절.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
즉 의를 향한 삶의 방향성이 없는 자.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자.
회개도 없고, 뉘우침도 없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아무런 개선이 없는 자.
그러면서도 스스로 죄 없다고 주장하는 자.
형제에 대하여 자신과 똑같이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자는 마귀의 자녀들이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의를 행하는 자들이다.
즉, 삶의 방향이 의를 향해 조준된 자들이다.
잠시 어긋날 수 있지만, 이내 다시 방향을 틀어 의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다.
작은 죄라도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진실하게 자백하는 자이다.
자백한 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의를 지키려는 자들이다.
온갖 미혹이 있어도 끝내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러면서 같은 모습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형제, 자매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두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소망을 품게 한다.
지금의 현실을 볼 때, 나 같은 죄인이 과연 하나님께 속한 자가 확실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있는가 하고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하지만 주님의 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갈 때, 결국은 주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미래의 소망을 품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실수한다.
후회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러한 나 자신이 너무 싫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주님의 자녀이다.
죄와 함께해서는 안 되는, 함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불완전하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인정이 내 잘못에 대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완전함이 죄를 범할 수도 있다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온전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완전함을 알기 때문에 완전함을 향해, 더 적극적으로 주님의 길을 따르라는 말이다.
부족하고 불완전하니깐 죄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의를 위해 나아가는 믿는 자들의 방향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삶, 의를 향한 삶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할 것이다.
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형제를 사랑하는 우리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거룩하신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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