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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45 로마인들에게(로마서)

당신은 누구입니까?(로마서 1:1~7)

by TwoTalents 2025. 4. 2.

 

 

제목 : 당신은 누구입니까?

 

본문 : 로마서 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말씀 :

오늘 본문인 로마서 11~7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정체성에 관한 깊은 묵상을 하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분에 맞게 행동하며 살아간다.

내가 누구인가를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를 누구로 인식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하고 있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의 인식이 나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선생으로서 제자를 가르친다.

반대로 제자는 제자로서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자기 인식을 잘못하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내가 의사가 아닌데 자기를 의사로 잘못 인식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

또한 내가 가진 정체성의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대통령이 있다고 하자.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엄청난 권한을 주었다.

국민이 세운 청지기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국민의 종으로 일하라고 세운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국민의 대표를 넘어 자신을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은 그저 백성이라고, 아니 국민을 종으로 여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인식하니깐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위해서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다.

불법 계엄도 하고, 내란을 저지르는 것이다.

불법을 저지른 자기 측근을 향한 수사를 자신의 권력으로 다 막아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정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몇백 번이고 압수수색을 하도록 한다.

그러고도 국민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개돼지 취급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신바짝 차려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올바르게 판단하여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깊이 살피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왕인 줄 아는,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그 가짜에게 자신의 추악함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듯 자기 정체성, 자신의 역할에 관한 바른 인식은 참으로 중요하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들어가기 전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오늘의 본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첫인사 부분이다.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전하는 첫인사를 통해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한다.

바울 자신이 누구인지를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 자신을 누구로 인식하고 있는가?

본문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먼저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종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가?

당시의 종은 내 것이, 전혀 내 것이 아닌 존재였다.

내 몸은 물론 내 목숨, 심지어 마음과 생각까지도 주인의 것이다.

주인이 가라면 가야 하고, 서라면서야 한다.

주인이 욕하고 때려도, 심지어 죽여도 종에게는 변호권이 없다.

주인에게 종이란 소통이 가능한 가축일 뿐이었다.

물론 종이라고 하여도 다 같은 종은 아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종은 그런 종이다.

종이라는 단어를 표기할 수 있는 헬라어 단어는 몇 가지가 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둘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자신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하고, 주인에게 철저하게 예속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바울은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께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음을 인식하며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도, 생명도, 생각도, 자유도 모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주께서 서라시면 서고, 앉으라시면 앉아야 한다.

죽음의 길인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주인이신 주께서 가라시면 가야 함을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다메섹을 향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려고, 살기등등하게 달려갔던 바울이었다.

하지만 그가 빛으로 임하신 주님을 만났다.

주의 목소리를 들었다.

주님의 정하신 뜻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 자기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당당하게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또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고백한다.

앞서 말 한대로 종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무언가를 행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에게 자아실현이란 개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종을 불쌍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종이 주인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사명, 아주 특별한 사명을 위임받은 종이라면 어떻겠는가?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종으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다.

종은 종인데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종이라는 것이다.

사도의 원래의 뜻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황제나 왕으로부터 특수한 임무를 띠고 파견된 자를 나타낼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황제나 왕이 친히 어떤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를 축복하며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 사도에게는 황제의 권한, 왕의 권한이 일정 부분 주어지게 된다.

그 사람이 바로 사도이다.

그냥 일반적인 종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오늘날로 치면 각 나라에 파견된 대사와도 같은 신분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여 상대국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를 받은 사람이 바로 대사이다.

아무나 대사로 임명하지 않으며, 실상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도가 이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사도는 주인으로부터 엄청난 신뢰를 받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종이지만, 주인이 아주 크고 중요한 임무를 믿고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께 신뢰를 받아, 주께서 주신 임무를 맡은 사도임을 분명히 인식하며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많은 경우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공격 받았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했었던 자신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기 확신과 인식이 더욱 중요했었다.

그는 스스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임을 반복해서 철저하게 자기 인식을 했던 것이다.

 

세 번째로 바울은 자기 자신을 복음의 전달자로 인식한다.

본문 1절을 다시 한번 읽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특정 임무를 위해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도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 임무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것이라고 인식한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자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한다.

택정함을 입었다.’의 헬라어는 아포리메노스이고, 이 단어의 기본형은 아포리조이다.

이 단어의 뜻은 갈라놓음이 되었다.’이다.

이것은, ‘따로 떼어 놓았다.’, ‘분리해 놓았다.’는 말이다.

바울이 세상에 나기 전에 이미 사도로서 구별함이 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처럼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핍박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하나님이 구별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움을 받은 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결코 자기의 힘이나, 자기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겸손한 종의 위치에서, 주께서 부르신 사도의 사명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는 자기 정체성이다.

 

바울은 본문 2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종으로서, 사도로서, 복음 전파자로서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복음의 내용은 한마디로 구원자 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본문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핍박자였던 바울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종이 되고, 사도도 되고, 복음 전파자가 되었다.

그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이름을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하고, 믿게 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바울은 종으로서, 사도로서, 복음의 전달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 복음을 위한 삶의 태도를 확실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삶은 그것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받게 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본문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여기서 너희도~’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 중에서~’라는 말은 로마에 살고 있는 모든 로마인 중에서란 말이다.

그러니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로마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울과 동일한 부르심을 의미한다.

바울과 동일한 부르심이 이 로마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임하셨다는 말이다.

바울처럼 동일하게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의 임무를 맡은 사도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종으로서, 사도로서, 복음의 전달자로서의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인식한 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로마에 살면서, 로마인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종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사도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복음 전파자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로마인들이 예수를 믿고 주께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그들의 정체성이다.

 

바울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첫인사의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한다.

본문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을 받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특별히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예수의 사도가 되게, 하나님의 복음 전파자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혜와 평강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로마에서, 로마인들에게 복음 전한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모험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확실한 정체성은 그들을 두려움 속에서도 움직이게 했다.

고난 속에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게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에, 그들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때에 그들에게는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은혜, 주님의 평강이 함께 했었다.

결국, 그들은 천국을 소유한 자들이 된 것이다.

 

말씀을 마무리.

2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냈던 이 편지를 오늘날 우리는 성경으로 받아들여 주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 편지는 로마 그리스도인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한국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내가 주의 사명을 받은 사람임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달자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정체성으로, 이 자기 인식으로 우리는 오늘도 최선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빌어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리스도의 종이다.

당신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복음 전파자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고, 바로 인식하여서, 올바른 정체성으로 그것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린다.

우리의 정체성이, 그 정체성에 합당한 삶이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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