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버지의 영화로움을 위하여….
본문 : 요한복음 17:1~16
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묵상 :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설교를 마치시고, 이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신다.
예수님 기도의 첫 번째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으로 사셨던 모든 시간의 이유는 곧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아들을, 곧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라고 기도하신다.
아들의 영화로움이 바로 아버지의 영화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들의 영화로움은 세속의 그것과 같지 않다.
예수님은 아들의 영화로움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본문 4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들의 영화로움은 이 땅의 부귀영화, 입신양명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아들의 참된 영화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맡기신 일을 이루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으로 아들은 영화롭게 되고, 그런 아들의 영화로움이 곧 아버지의 영화로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기에 주님은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인가?
아버지는 아들에게 죽음을 사명으로 주셨다.
당신의 아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명령하셨다.
남을 위해 죽으면서도 칭찬 하나 듣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과 멸시를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몇 년씩이나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배신당해야 하고, 그 친구들에게 저주받아야 하고, 그 친구가 사악한 이들에게 자신을 팔아넘기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들이 이런 황망한 일을 온전히 감당하실 때, 모든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구원을 얻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수치와 죽음까지 감당하심으로 주님은 영화롭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로움은 곧 아버지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이다.
말씀을 묵상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교회는 어떤 영화로움을 추구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나의 영화로움은 무엇인가?
설교가 아닌 개인의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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