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신약)/57 빌레몬서 묵상(I)

믿음을 위해 교회를 옮길 필요가 있다.(빌레몬서 1:1-16)

by TwoTalents 2021. 12. 21.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믿음을 위해 교회를 옮길 필요가 있다.

 

본문 : 빌레몬서 1:1~16

1.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4.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8.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묵상 :

빌레몬서는 바울과 빌레몬, 바울과 오네시모, 그리고 빌레몬과 오네시모 세 사람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신이다.

이 개인적인 서신이 성경으로 포함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 서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향한 무익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당시, 그는 바울은 물론 그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까지 유익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바울의 서신만으로 본다면 빌레몬 역시 훌륭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빌레몬은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가 보여준 사랑과 믿음은 많은 형제, 자매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믿음의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던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도주를 했던 것이다.

도주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금전적인 부분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어려움이 있었다면, 훌륭한 주인인 빌레몬과 함께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오네시모는 그 집을 도망쳐 나오는 것을 선택하였다.

왜 그랬을까?

빌레몬이 성도들 사이에서는 믿음도 좋고, 사랑이 많으며 인격적이었지만, 자신의 종에게는 본색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던 것인가?

그래서 문제를 일으킨 오네시모가 무서운 주인을 피해 도망한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농후한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이후라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다시 빌레몬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계의 문제로 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모든 사람들과 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나쁘게 하는 것 없고, 문제 될 것도 없지만, 그렇더라도 껄끄러운 관계는 있을 수 있다.

일단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

오늘날도 사장과 직원의 사이에서 동등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물며 당시에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무슨 대등함을 기대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빌레몬을 통해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어쩌면 오네시모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신이 사는 방법을 선택하고, 그 선택대로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친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바울과 오네시모가 만나게 되는 과정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어떤 기이한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울은 오네시모를 향해 유익한 자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켜 빌레몬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오네시모가 이방 전도의 최고 권위자인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자식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과거를 회개하였고, 바울에게 빌레몬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고백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빌레몬의 집으로 오네시모를 돌려보내고, 그에게서 오네시모가 자신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빌레몬은 분명히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며,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그와 함께 있었던 오네시모는 주님을 제대로 영접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빌레몬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와 여러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문제를 일으키고 도망자였던 상황에서 바울을 만나,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로 영접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엄청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울과 오네시모가 만나게 된 상황이 오네시모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여러 적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교제하는 사람이 바뀌고, 장소가 바뀜으로 사람이 바뀌게 된 오네시모를 보며 교회에서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한 교회에 붙박이처럼 몇십 년을 묵묵히 다니는 사람을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런 분위가 조성된 것에는 성도들이 교회 옮기는 것을 싫어하는 목사들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기에 이런 인식이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인식 때문에 목사와의 관계가 힘들고, 성도와의 관계가 힘들어도, 무엇보다 자신의 믿음 성장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데도 억지로 참고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목사가 나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

아무리 간절하게 나를 위해 기도하는 목사라고 할지라도, 도저히 나의 심령을 건드리지 못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같은 교회에서 나누었던 성도들이 나를 천국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맞지 않는 부분을 참고 견딘다고, 천국 문이 그냥 열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과 구원을 위해 진지한 기도와 고민이 필요하다.

신앙은 결코 의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목사님, 착한 성도들이라도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내 믿음에 아무런 성장을 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영혼이 힘들어한다면 진지하게 교회를 옮기는 것에 대해 기도할 필요가 있다.

내 신앙의 상태에 맞는 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자기 기분대로, 자기 입맛에 맞게 습관처럼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이다.

이 관계가 가장 먼저 바로 서고 건강해야 한다.

우선적인 것이 무엇인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신앙은 목사와 성도를 향한 의리가 아니다.

신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사람이교회'는 온라인교회입니다.

교회 등록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amichurch@naver.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