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Talents 2020. 7. 1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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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의 자녀들아...

 

본문 : 갈라디아서 4:12~20

12.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 하였도다

15.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말씀 :

오늘 본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순수한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믿었던 때와 율법주의에 빠져 복음을 왜곡시킨 본문 당시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다.

이 비교를 통해 다시 한번 지금의 모습, 율법과 형식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 모습이 옳은지를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갈라디아에 와서 처음 복음을 전파했을 당시를 상기시킨다.

본문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바울이 처음 갈라디아로 왔을 때, 그는 갈라디아 사람들은 전도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더욱 깊이 다가가려고 했었다.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가지는 기본적인 가치관이다.

고린도전서 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이렇게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그들도 주님을 믿어 진정한 자유의 몸이 된 자신처럼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갈라디아 사람들도 이런 바울에 대해 해롭게 하지 않았었다.

바울이 자신들이 믿는 신앙이 아닌 다른 신앙을 전파했음에도, 바울을 배척하거나 핍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이나 다른 가르침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갈라디아 사람들은 외모에 의한 편견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본문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잘 알려진 대로 바울에게는 육체적 가시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만성 질병으로 보고 있는데, 어떤 학자는 눈병의 일종인 안질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신경질환인 간질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복음을 전하는 이에게는 분명히 약점이다.

그리고 복음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하는 자에게 그런 병이 있다면,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불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은 그런 약점을 가진 바울을 홀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외모나 조건을 보지 않고 오직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집중하였다.

결국, 그 복음을 받아들여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믿음을 가진 뒤에는 바울을 사역자로 인정하며 극진히 대접하였다.

바울은 그들의 대접에 대해 자신을 마치 하나님의 천사처럼, 마치 그리스도 예수처럼 영접해 주었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랬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도대체 지금은 왜 이상해졌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본문 15, 16.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도대체 그때의 그 아름다운 모습, 하나님의 복을 받아 마땅한 모습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사역자인 바울을 잘 대접한 것이 복된 모습이라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순수하게 믿음을 나타냈던 모습, 그 순수한 믿음으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섬기며 베풀었던 그 사랑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전파될 수 있다면, 복음 전하는 일을 하는 바울을 위해 눈이라도 빼줄 것 같이 뜨거운 믿음을 가진 갈라디아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이 변해버린 것이다.

사랑이 풍성하고, 복음에 열정적이었던 그 복된 모습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오히려 여전히 변함없이 진리를 전하고 있는 바울과 원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토록 존경하던 바울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전하는 진리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바로 율법주의, 형식주의라는 다른 복음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럴듯한 가짜 진리에 현혹되어서 이제는 진짜 진리가 들어가질 않는 것이다.

바울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바울 때문에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바울의 말을 믿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율법주의자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고발한다.

본문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율법주의자들이 그토록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집착하면서 열심을 내는 이유는 실제적으로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본문에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라고 되어있다.

이 부분은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누구와’, 혹은 무엇과이간시키느냐가 해석의 관건이다.

 

새번역은 여러분을 내게서 떼어놓아서라고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 쉬운 성경 등도 모두 이런 취지의 번역이다.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울과 그 일행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들은 계속해서 바울을 공격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바울의 영향력을 없애겠다는 모략이다.

 

본문의 이간시켜라는 헬라어로 엑클레이오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내쫓다’, ‘배제하다이다.

두 번째 해석은 내쫓다’, ‘배제하다라는 뜻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과 우리말 성경은 이간의 대상으로 사람을 특정하고 있지 않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말하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그러니깐 할례를 받지 않았고, 유대 절기에 별 관심이 없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구원에서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며, 자기들 마음대로 내쫓아내고 그 이유를 할례받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 절기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해석은 모두 가능하다.

어떤 해석이든지 율법주의자들의 나쁜 동기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렇게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울과 떼어놓으려고, 아니면 구원에서 배제 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바울을 불신하게 만들든지,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도록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기들의 말을 듣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입지, 영향력을 크게 하기 위해서 가짜 복음으로 갈라디아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였는데.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을 위해 다른 복음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그들을 향해 이렇게 전한다.

본문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바울은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을 놓고, 율법주의자들과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선한 동기라면, 올바른 가르침이라면 그 열심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바울 자신이 잊혀져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기억되고, 여전히 구원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슬프게도 갈라디아 교회에 나타난 율법주의, 형식주의자들은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의 동기는 악하였고, 그들의 가르침은 거짓이었다.

자신들의 입지와 영향력,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위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큰 해악을 끼칠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막아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어떻게 살렸는데, 가짜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는 것을 가만히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고백한다.

본문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른다.

이는 그들을 자신의 영적 자녀로 생각하는 바울의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 즉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바울이 갈라디아로 와서, 아픈 몸을 이끌고 소리 높여 복음을 전하였다.

처음에는 누구 하나 귀 기울여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많은 좌절과 함께 그만두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복음을 외치고 전파할 때, 드디어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진지하게 말씀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사람들은 믿음을 고백하게 되었고, 성령을 체험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의 사람으로 바로 서게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해산하는 수고라고 표현할 정도로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율법주의로 인해 갈라디아 성도들이, 해산의 수고가 이루어지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때보다 더 못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변해버린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그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바울의 마음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직접 갈라디아로 가면 가장 좋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문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직접 가서, 갈라디아 성도들과 대면하여 가르치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장은 바울이 갈라디아로 갈 처지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최선을 다해 편지에 자신의 감정을 실으려고 노력하였다.

글로 느껴지지 않겠지만, 자신은 언성을 높여 화를 내며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을 듣고, 자신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워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전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현 상황을 배교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화를 낼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였다.

바울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바울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율법주의라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흔들리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르며 안타까워한다.

자신의 영적 자녀들이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하루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편지를 통해서라도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그 마음을 그들이 깨달아 다시 하나님 안에서 자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믿음의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이다.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다.

순간순간 세상 삶에 짓눌려 주님을 배반했던 적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때로는 잘못된 판단으로 믿음의 참된 길을 가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순간부터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단 한 번의 흔들림도, 한순간의 배교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교만이고, 거짓말이다.

물론,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배교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넘어질 때가 분명히 있다.

이럴 때 어떻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아 마땅했던 그 모습을 기억하며 다시 돌아와야 한다.

더 나빠지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기 전에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오늘 바울의 편지는 갈라디아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는 바울의 마음이 오롯히 담겨있다.

오늘 이 설교를 통해 한국 교회와 믿음의 신앙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부족한 주의 종의 마음이 전달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제가 알고 있는 한도에서 잘못된 길을 걷는 성도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길을 걷는 성도들...

혹시라도 이런 분들이 있다면, 그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분들에게 깨달음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의 은혜로 회복되어 끝내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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