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는 자의 소리/62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빛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요한일서 2:7-11)

TwoTalents 2024. 6. 2. 20:51

 

제목 : 빛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본문 : 요한일서 2:7-11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말씀 :

지난 본문에서 요한은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말만 번지르르한 가현설주의자들을 비판하였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고, 그 속에 진리가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명을 지키는 자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이며...

그렇게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지는 것, 즉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자들이 알고 지켜야 할 그 계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먼저 요한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말한 계명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본문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한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계명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전한다.

성도들이 이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옛 계명이라는 것이다.

본문의 처음부터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프 아르케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태초부터라고 할 때도 사용되었고, 지금 말고 과거에 전해 들었던 복음이나 가르침을 표현할 때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 처음부터의 정확한 시점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창조 때부터 시작된 구약의 율법부터가 될 수도 있고, 예수님의 가르침부터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교회가 전해 들은 이전의 메시지나 사도의 가르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상 구약의 율법부터로 보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처음부터의 시점을 구약 시대로 보고, 옛 계명은 구약의 율법으로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요한이 쓰고 있는 계명은 이미 성도들이 알고 있었던 계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요한은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계명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요한은 이 옛 계명이라는 것이 곧 새 계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밝힌다.

본문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본문 7절에서 요한은 성도들에게 새 계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옛 계명을 쓰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8절에서는 다시 새 계명을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이러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옛 계명과 새 계명이 본질상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옛 계명과 새 계명은 사실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이 말하고 있는 새 계명은 어떤 것인가?

요한이 말하고 있는 새 계명은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새 계명이라고 언급하시며 말씀하셨던 그 사랑하라이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 당신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그 마음, 그 모습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이 말씀을 이어서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뒤이어 나오는 본문 9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때 처음 주어진 말씀이 아니지 않은가?

성경에는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주 많이 나온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기본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235~40.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한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으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 사랑, 그러니깐 인간을 향한 사랑,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 성경 전체의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사랑이 구약 율법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구약에서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을 살펴봐도...

1~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다.

나머지 5~10계명은 인간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요한의 처음 말처럼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 옛 계명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왜 다시 새 계명을 쓴다고 말한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율법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된 율법의 사랑은 그 이해도의 깊이와 확장성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시간적 차원에서의 새로움이 아니라, 질적인 차원에서 새 계명인 것이다.

 

이전에는 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그것의 참뜻, 참된 의미를 드러내고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을 넘어, 그렇게 하는 의미를 아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참된 뜻을 아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계명의 참된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님을 비난하고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율법의 참된 뜻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온전히 깨달았다면 병자를 고치시며 사랑하신 예수님을 향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만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켜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깐 계명을 온전히 지킨 것이 아니다.

형제를 화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확장하여 적용하셨다.

그리고 실제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이성에게 음욕을 품었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요한은 옛 계명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예수님으로인해 완성된 새 계명을 전하는 것이다.

 

요한은 이 새 계명과 함께 어둠이 지나가고 있음을 선언한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전한다.

이미 비춰진 이 참 빛으로 인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

이제 빛 가운데 거할 것인지,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인지를 선택하여야 한다.

이것은 내가 말로만 빛 가운데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빛 가운데 거하여야 한다.

본문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빛되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주께서 주신 계명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빛 가운데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들의 실상은 어둠에 있는 자들이다.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전혀 실천하지 않는 이들이다.

 

하지만 주님의 계명을 지켜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본문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자신이 빛 가운데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였다.

자신이 빛의 자녀임을 증명했다는 말이다.

또한 빛 가운데 거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거리낄 것이 없게 된다.

본문의 거리낌은 헬라어로 스칸달론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올가미’, ‘함정’, ‘죄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사랑을 실천하는 자는 자신을 넘어트릴 덫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에 죄에 빠질 염려가 없는 것이다.

?

그의 삶은 빛 가운데,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둠에 거하는 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계속해서 덫에 걸리고, 함정에 빠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본문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자신이 빛의 자녀임을 증명했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자신이 어둠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어둠에서 죄를 범하면서 그러다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장애가 없는 사람도 아주 오랜 기간 어두운 곳에 갇혀 있게 되면, 나중에 밝은 곳으로 나와도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어둠으로 인해 시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미움 때문에 영적인 맹인이 되는 것이다.

분별력을 잃게 되고,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어디로 가는 것이 바른 길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어둠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이토록 무섭고 위험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교회 신앙공동체 여러분...

그리고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말씀하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도 서로를 그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주님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고 모함과 억울함, 모든 고난을 참으셨다.

과연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참으로 힘든 계명을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계명을 지켜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내가 살 수 있다.

 

요한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이신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사랑이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사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곧 내 영혼이 어둠에 거하면서 죽어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앞서도 말했지만, 예수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마음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도 안일하고 교만한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믿음과 주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사랑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믿음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사랑을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빛 가운데 거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선택한 그 사랑의 실천하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닮을 수 있기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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